-
조선일보 16일자 사설 '비밀 문서 누설 자백한 국가정보원장'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예상했던 대로 김만복 국가정보원장과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 간의 대화록을 유출시킨 사람은 김 원장 자신이었다. 국가 최고 보안 책임자가 스스로 국가 정보를 유출했다고 자백했다. 검찰이 수사에 나설 기미가 있자 두 손 번쩍 든 것이다.
김 원장은 15일 기자회견에서 "방북 공작설이 제기돼 사실관계를 밝히기 위해 면담록을 작성했다"며 "의혹을 막기 위해 주변 인사 13명과 한 언론사 간부에게 면담록을 비보도로 전달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대선 하루 전날 방북해 여러 의혹이 제기돼 왔다. 김 원장이 자기 손으로 누설해 어느 일간지에 실린 이 방북 면담록이란 문건은 남한 정보총책과 북한 대남총책이 남한 대선 하루 전에 급히 만나 나눈 대화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하품 나는 내용이다. 이 엉터리 면담록에서 눈에 띄는 것은 김 원장이 이명박 당선자와 한나라당을 좋게 얘기하는 부분밖에 없다. 누가 봐도 김 원장이 언론을 이용해 면담록을 일부러 공개되게 만들어 이 당선자에게 아부하려 했던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수장이 이런 유치한 언론 플레이로 구명운동을 한 것이다.
김 원장이 이런 일을 벌이자 국정원 내부가 들끓었다고 한다. 이편저편으로 갈라져서 대통령직 인수위에 보고를 하는 통에 인수위 관계자들이 "국정원 꼴이 너무 한심해 말이 안 나온다"고 할 정도다.
국정원은 지난 대선 기간 중 노골적으로 이 당선자 뒷조사를 했다. 김 원장이 앞장서지 않고 이런 일이 가능했을는지 의문이다. 이제 정권이 바뀌게 되자 김 원장부터 살겠다고 발버둥을 치니 기관 전체의 꼴이 말이 아니게 된 것이다.
김 원장이 사퇴한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핵심은 김 원장이 대선 하루 전에 급히 방북해야 했던 진짜 이유가 무엇이고 그가 김양건 부장과 나눈 진짜 대화록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 내용을 공개할 수 있는 것이든 아니든 검찰은 즉각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
국정원에서 이런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군사 정권이 끝난 뒤에도 김영삼 정권에서 안기부는 여당 총선자금을 맡아두는 금고 역할을 했다. 김대중 정권에선 휴대폰 불법 도청을 상시적으로 벌였다. 정권 교체기마다 국정원 내부에서 벌어진 지연, 학연, 혈연 다툼은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고 있다. 이 정도면 정보기관이 아니라 각종 파벌이 얽히고설킨 전근대 정당이다.
대한민국과 같은 안보 환경에서 정보기관은 없어서는 안될 핵심 국가 조직일 수밖에 없다. 새 국정원장은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국정원을 국민의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최후 보루로 환골탈태시켜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