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선 공천 시기문제로 한나라당 내 갈등이 증폭될 조짐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안정된 정권교체를 위해 2월 국회가 끝난 후 공천할 것을 시사한 데 이어 강재섭 대표 역시 공천을 늦출 가능성을 내비치자 박근혜 전 대표가 직접 나서 비난했다. 또 박 전 대표 진영의 집단적 반발도 예상되는 상황이다.

    강 대표는 2일 오전 최고중진 연석회의에서 "총선은 그 시기가 지극히 전략적이고 현실정치를 반영하는 것"이라며 "정치 일정에 따라 (공천시기는) 빨라지거나 늦춰질 수 있는 것이지 어떻게 '언제다'고 학력고사 시험보듯이 그렇게 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또 "당이 일부러 늦게 (공천)하거나 빨리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늦어도 3월 9일 정도까지는 공천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해 공천을 뒤로 미룰 뜻을 나타냈다.

    앞서 이 당선자는 "정부조직법도 바꿔야 하고 각료 인사청문회도 해야 하는데, 그 기간에 공천하는 문제와 겹쳐버리면 국회가 안된다"면서 "공천이 안되겠다는 국회의원이 거기(국회)에 나와서 일을 하겠느냐"며 공천 시기 논란에 관한 입장을 밝혔다. 새 정부 출범인 2월 25일 전에는 총선 공천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이 당선자와 강 대표는 1일 단배식에 나란히 참석해 "수군거리지 말라"는 똑같은 표현을 사용하며 공천 논란과 관련한 경고 메시지를 전했다. 이 당선자는 "뒤에 숨어서 수군수군 대는 것은 없어졌으면 좋겠다"며 박 전 대표측을 겨냥했으며, 강 대표는 "공천 가지고 괜히 모여서 불이익 여부를 따지지 말라. 그런 얘기 그만 수군거려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 당선자와 강 대표가 보조를 맞춰가는 모습이 박 전 대표측을 더욱 불안케 만드는 양상이다. 또 당 안팎의 인적청산 요구도 박 전 대표를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인명진 윤리위원장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체돼있는, 인적이 청산되지 않은 요소가 있다는 느낌을 한나라당에서 받고 있다"고 말했다. 총선을 계기로 과감한 인적쇄신이 필요하다고 보느냐는 물음에 "그렇게 되면 참 좋다. 그것을 국민이 바라고 있다"고 답했다. 인 위원장은 공천시기도 "정권교체기에 접어들고 있어 여러가지 나라의 일이 진행되는 흐름을 보고 계파적 이익이 아닌 국정운영 등 여러 가지를 보면서 합리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상식적으로 볼 때, 국민이 볼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원활하게 정권을 인수받을 수 있나, 그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며 사실상 이 당선자의 제안에 무게를 실었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구랍 27일 당 소속 국회의원, 당원협의회 위원장 대부분이 참석한 연석회의마저 불참했던 박 전 대표는 2일 대구·경북신년하례회를 찾아 작심한듯 거친 표현으로 이 당선자와 강 대표를 향해 강도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박 전 대표는 이 당선자의 대통령 취임 이후 공천 시사에 대해 "석연찮은 이유로 당에서 가장 중요한 공천을 그렇게 뒤로 미룬다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즉각 반박했다. 박 전 대표는 또 강 대표가 3월 9일까지 공천을 완료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굉장히 의도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며 곱지않은 시선을 보냈다. 박 전 대표측은 1월 내 공천을 주장해 왔다.

    박 전 대표는 '물갈이' '정치보복'과 같은 극한 용어도 사용했다. 그는 "물갈이, 물갈이 하는데 한나라당이 10년 동안 야당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분들이 고생을 했느냐. 아주 비참할 때도 있었고 아무도 오려고 안 할 때도 있었다"며 "그런 고생한 사람이 있어서 정권교체까지 이뤄진 것인데 그들을 향해 물갈이 이야기가 나오는 자체가 전직 대표를 한 나로서는 안타깝고 뵐 면목이 없는 일"이라고 당내 인적청산론을 반박했다.

    이날 공천 시기와 관련한 강 대표의 발언에도 박 전 대표는 "선거운동 시작을 보름 남겨놓고 발표한다. 굉장히 의도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된다"며 "그래서 행여 정치보복이라든가 그런 것이 있다면 완전히 우리 정치문화를 후퇴시키는 일"이라고 대립각을 세웠다. 그는 "그런 식으로 된다면 앞으로 경선이란 것은 있을 수 없을 것"이라며 "승자측에서 마음대로 하는 것이 법이 된다는 이야기 아니겠느냐"고 주장했다.

    박 전 대표가 강한 톤으로 불만을 제기했지만, 이 당선자측은 "심각하게 다룰 문제가 아니다"며 맞대응을 피했다. 이 당선자의 '복심'으로 불리는 정두언 의원은 "공천 때는 반발도 하고 하는 것이고, 으레 시끄러운 것"이라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러나 박 전 대표측 일부는 사정이 다르다. 이들은 조만간 회동을 갖고 공천 시기에 대한 대응방안을 협의할 것으로 알려져 당내 갈등이 표면화될 가능성은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