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일자 오피니언면 '시론'에 진석용 대전대 교수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각종 의혹에도 불구하고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는 데 대해 대통합민주신당 관계자들이 “국민이 노망난 것 같다” “이상한 나라가 됐다” “유권자가 가짜가 된다”는 등의 말을 했다고 한다. 아무리 답답해서 내뱉은 말이라고 해도 해서 될 말이 있고,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국민주권이며, 국민주권은 국민의 보편적 선거권과 정부선택권으로 구현된다. 민주국가의 국민은 누구나 정당을 결성할 수 있고, 대통령 등 공직에 출마하여 국민의 지지와 선택을 호소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을 선택해 주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막말로 국민을 비난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이명박 후보의 그 많은 ‘위장’ 시리즈와 ‘의혹’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지율에 변함이 없고,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역문제와 탈당문제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당 후보보다 앞선 지지율을 보이는 이유를 정말로 모르는가? 정부를 선택하는 일은 수학문제의 정답을 풀듯이 진리를 찾는 일이 아니라 둘 중에서 혹은 여럿 중에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혹은 덜 불리한 정치 환경을 선택하는 일이다. 보수 정당의 후보들이 그렇게 흠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변함이 없는 것은 그 후보들이 ‘진리’라서가 아니라 덜 나쁜 대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정부와 여당이 국민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생각해보라. 이름만 ‘참여정부’였을 뿐 자신들의 주장은 언제나 진리요 선이라고 굳게 믿고, 이 진리와 선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조리 허위와 악의 무리라고 몰아붙이지 않았는가? 이런 독선과 오만에 질겁하여 국민들이 등을 돌렸는데, 자신들을 돌아보기는커녕 보수 언론의 조작에 국민들이 놀아나고 있다고 국민의 의식 수준을 얕잡아보고, 국민의 도덕적, 이성적 판단능력에 정신적 테러를 가하지 않았는가?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 모습을 눈앞에 뻔히 보면서도 북한과 평화로운 사이가 되었다고 선언하고 싶어 안달을 내는 ‘이상한’ 평화주의로 온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고 믿었단 말인가? 이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들에게 전쟁이 온다고 협박하면 전쟁이 두려워서라도 자신들을 따를 것이라고 믿었는가? 언필칭 평등을 외치며 듣기에 그럴듯한 온갖 개혁정책을 내걸었지만 준비 부족과 서툰 집행으로 정작 불평등의 문제는 해결하지도 못한 채 국민 간의 갈등과 분열만 조장하지 않았는가? 불과 몇 달 사이에 세 차례 당대당(黨對黨) 통합을 하고 네 차례 창당 또는 당명 개칭을 하여 장차 뭘 하려는 것인지 국민을 헛갈리게 하고, 여당의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도록 만들지 않았는가? 아침에 지은 정당을 저녁에 부수고 이튿날 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정당 쇼를 보여주면서 자기 당을 지지해달라고 말할 염치가 있는가?

    건국 이후 40년간 정권을 맡아온 보수주의의 역사가 독재와 부정부패와 인권 유린과 정경유착으로 얼룩져 있다는 것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보수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밖으로 도덕성과 개혁을 내세우는 좌파도 안으로는 똑같이 부패할 수 있고, 그 이상으로 무능할 수 있다는 것을 지난 5년간 경험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들을 비정상으로 몰아가는 사람들은 국민의 선택으로 정부를 세우는 민주주의의 이념과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길을 택해야 한다. 민주주의 대신 ‘노망 안 난 사람’만을 가려 ‘진짜 유권자’로 삼아 ‘이상하지 않은 나라’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정치이념을 주창하고, 이를 공개적으로 선언해야 한다. 그것이 논리적으로 일관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