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9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중앙선관위가 27일 대통령선거 국고보조금으로 7개 정당에 총 284억7000여만원을 지급했다. 대통합민주신당 116억5000여만원, 한나라당 112억9000여만원, 민주노동당 20억3000여만원 등이다. 그러나 선관위가 대선 후보 1인당 선거비용 상한액으로 공고한 금액은 465억9300만원이다. 정당들로선 부족한 수백억원을 어떻게든 만들려고 할 것이다.

    정치자금법은 기업의 정치자금 기부를 금지하고, 개인 후원금도 최대 1000만원으로 한정하고 있다. 정당의 돈줄을 죈 것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의원 1인당 3000만원씩 신용대출, 한나라당은 200여억원 대출을 대책으로 내놓았지만 현장에선 '실탄'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라고 한다.

    몸이 단 후보들로선 불법 자금의 유혹을 받기 마련이다. 대선 때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불법 자금이 판을 쳤다. ‘안풍사건’은 안기부 자금 1197억원이 신한국당의 1996년 총선 자금 등으로 들어갔다는 사건이다. 지난 2000년 이 사건이 불거졌을 때 신한국당 후신인 한나라당은 그 돈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1992년 대선 잔금이라고 주장했고, 법원 판결도 사실상 이를 인정했다. 대선 때 쓰고도 1197억원이 남았다면 그 선거에 동원한 자금 규모를 알 만하다.

    1997년 대선 때도 삼성 혼자서만 여당 후보에게 100억원 가까운 돈을 건네고 야당 후보에게도 ‘호의’를 전했다는 사실이 ‘X-파일’을 통해 생생하게 드러났다. 한나라당은 국세청을 동원해 23개 기업으로부터 166억여원의 불법 자금을 받기도 했다. 2002년 대선의 경우 한나라당이 823억원, 민주당이 113억원의 불법 선거자금을 받아 관련자들이 감옥에 갔다. 몇몇 재벌 그룹은 100억원이 넘는 현금을 ‘차떼기’ ‘박스떼기’로 주기도 했다.

    이번 대선은 흠집내기, 발목잡기로 일관하고 있다. 정책 토론은 이미 물 건너갔다. 어느 한 당도 종합 공약집조차 내놓지 못했다. 이런 선거에 불법 자금까지 끼어들면 선거라고도 하기 힘들 것이다.

    정치권과 재계는 지난 3월 국민 앞에서 ‘이번 대선에서는 불법 정치자금을 달라고 하지도 않고, 주지도 않겠다’는 서약문에 서명했다. 과거 대선에선 그러고도 받고 그러고도 줬다. 이번에도 후보와 기업이 그런 짓을 되풀이하다간 국민들이 나라를 향한 희망조차 포기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