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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4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창균 정치부 차장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가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8일 벤처 기업인 특강에서 보수와 진보를 구별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국가의 역할을 구경꾼으로 보고 가급적이면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 보수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라는 것이 진보”라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3년 전 다른 구분 방식을 얘기한 적이 있다. 2004년 5월 27일 연세대 특강에서 “합리적 보수, 따뜻한 보수, 별놈의 보수 다 갖다 놔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는 것”이라고 했었다.
‘감별법 A’에서는 “국가가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 보수, 국가가 적극 개입하라는 것이 진보”이고, ‘감별법 B’에서는 “바꾸지 말자는 것이 보수, 바꾸자는 것이 진보”라는 얘기다. 두 방식 모두 서구(西歐)에서 정파를 구분하는 데 쓰인다. 다만 A 방식은 우파, 좌파를 나누는 것이고, B 방식이 보수, 진보에 해당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선 우파=보수, 좌파=진보라는 등식을 만들어 모든 이념 대결을 ‘보수 대(對) 진보’ 구도로 설명한다.
단어의 원래 뜻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우파·좌파는 변화의 방향을 가리키는 말이고, 보수·진보는 변화의 속도를 일컫는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 말처럼 우파는 항상 바꾸지 말자는 쪽이고, 좌파는 언제나 변화 지향적일까.
1980년대 말 개혁·개방의 물결을 맞은 동구 공산권에서 시장원리를 도입하려는 우파 세력은 개혁파라고 불렸고, 국가통제 경제를 유지하려는 좌파 원리주의자들은 수구(守舊)로 몰렸다. 어떤 사회가 원래 오른쪽에 있었다면 왼쪽으로 가자는 쪽이 진보가 되는 것이고, 반대로 왼쪽에 있었다면 왼쪽에 머물자는 쪽이 보수로 간주된다.
2007년 대한민국의 현실 역시 “별놈의 보수를 다 갖다 놔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는 것”이라는 노 대통령의 말과는 딴판이다. 우파 정당인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는 이것저것 바꾸겠다는 공약을 내놓고 있다. 선진 대한민국을 이끌 인재 양성을 위해 ‘하향 평준화’ 교육정책을 뜯어고치겠다는 것이고, 성장에 필요한 혈액 공급을 위해 금산(金産) 분리를 완화하겠다는 것이며, 전 세계는 미디어 융합 시대인데 언론매체마다 칸막이를 쳐놓은 신문·방송법을 전면 손보겠다는 것이다. 반면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는 지난 10년 좌파정권이 다져 놓은 정책 틀을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이 땅의 좌파를 진보, 우파를 보수라 부르는 까닭은 ‘레드 콤플렉스’의 어두운 기억 때문이다. 자칫 ‘빨갱이 사냥’이라는 오해를 받을까 봐 좌파를 좌파라 부르지 못하고, 어감이 좋은 ‘진보’ 명찰을 대신 달아 준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좌우 힘의 균형은 오래전에 역전됐다. 예전엔 우파가 좌파를 향해 정체성을 따졌지만, 2007년 대선에선 좌파들이 우파를 향해 이념 전쟁을 선포하고 있다. 상대 진영을 정글 자본주의로 몰면서 ‘잘사는 20’ 대 ‘못사는 80’으로 유권자를 갈라치는 것은 좌파가 우파를 겨누는 전형적인 전술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는 “어떤 가치가 옳은지를 놓고 대(大)논전을 벌여야 한다”고 했다. 옳은 말이다. 제대로 민주주의 한다는 나라의 선거는 좌파, 우파 간의 정책이념 논쟁으로 치러지는 법이다.
나라의 번영은 우파가 이끈다는 것이 역사 속에 증명된 법칙이다. 그렇다고 우파만 계속 집권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효율성을 강조하는 우파가 몇 차례 집권하고 나면 경제는 성장하지만 사회엔 그늘진 곳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좌파 정부가 등장해서 힘 없는 자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것이 순리다.
대한민국도 우파, 좌파 정권이 번갈아 집권하면서 양쪽 날개로 나는 선진 궤도로 접어들 때가 됐다. 그러자면 우파, 좌파가 자신의 진짜 이름표를 달고, 자기 정체성을 솔직하게 밝히는 풍토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