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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인 지지율만 놓고 본다면 범여권에서 누가 대통령 후보로 나온다 해도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이기기 힘든 상황이다. 범여권 내부에서 조차 후보단일화 카드도 2002년 대선 때만큼의 효과를 내기 힘들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자당 대통령 후보 선출을 해놓고도 좀처럼 해답이 안 보이는 범여권의 상황은 답답하다. 통합신당의 한 재선 의원은 "솔직히 매우 힘든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나 최근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섣불리 판단하긴 이르지만 통합신당은 15일 대통령 후보 선출 뒤 빠르게 단합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동영 후보는 자신의 초반 대권레이스를 '화합'에 맞췄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경선 후유증을 씻고 당을 정동영 중심으로 재편한 뒤 지지율을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인데 일단 '출발은 나쁘지 않다'는 평이다. 정 후보 스스로 자세를 낮추면서 경쟁 후보진영에 섰던 의원들을 적극 껴안고 있는 행보도 좋은 점수를 얻고있다. 16일 열린 첫 의원총회에서 정 후보는 참석한 의원 전원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특히 자파 의원 보다 손학규 이해찬 후보를 지원했던 의원들과의 스킨십 강화에 주력했다. 정 후보의 이런 적극적인 모습에 상대후보에 섰던 의원들도 박수갈채를 보내는 등 빠르게 화합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 관계자는 "경선 후유증을 걱정했는데 일단 크게 흔들일 일은 없을 것 같다"며 안도했다. 당 홈페이지를 통해 일부 지지자들의 이탈현상이 있지만 당내에서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박빙의 승부로 끝난 한나라당 경선결과와 달리 통합신당 경선의 경우 정 후보가 압승을 거두면서 손학규 이해찬 두 후보의 입지가 크게 위축된 점도 분열의 가능성을 줄인 요인으로 꼽힌다. 손 후보의 경우 "수행을 하라면 수행원을 하고 운전대를 잡으라면 운전을 하겠다"면서 정 후보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후보의 경우 친노진영 내부에서 '독자세력화' 및 '문국현 지지' 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당장 이탈움직임을 보이긴 힘들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경선효과의 지속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하지만 경선 뒤 정 후보와 통합신당의 지지율도 크게 상승했다. 15일 경선 직후 실시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서 정 후보는 20.2%를 얻으며 처음으로 20%대 고지에 안착했고 통합신당의 지지율 역시 경선효과로 7.3%P나 올라 25.1%를 기록했다. 정 후보가 이런 지지율 상승을 지속할 자체동력을 만들고 노무현 대통령과 친노진영의 지지를 얻어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지만 당 내부에선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에 턱없이 부족한 지지율이 범여권을 분열보다는 결속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 것"이란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반면 2006년 지방선거 압승 뒤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최근 불안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엉성하게 봉합했던 이 후보와 박근혜 전 대표 진영의 경선 후유증이 대선을 코앞에 두고 곳곳에서 터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선 전 극명히 드러났던 양 진영의 정책과 공약에 대한 입장차는 당직인선의 갈등으로 폭발하고 있는 양상이다. …
경선 뒤 정치적 발언을 자제했던 박 전 대표는 15일 저녁 기자들을 만나 "요즘 많은 전화를 받는 데 전화 내용이 (당이 친박 성향의 사무처 당직자들을) 임기가 남았는데도 제거하고 한직으로 보내고 잘라내고 한다는 거다. 저를 도운 사람들이 죄인가요"라며 직접 이 후보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고 같은 날 친박 의원들은 이 후보의 대표공약이라 할 수 있는 '경부운하'에 대해 "무기명 표결로 당론 여부를 정하자"(유승민 의원)며 제동을 걸었다.
이 후보 측에서도 이런 박 전 대표 진영의 행보에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어 당내에선 이명박-박근혜 두 진영의 갈등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양측 모두 상대진영에 대한 불씨가 여전히 크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 후보 측은 '백의종군'을 언급하며 내부적으로는 독자세력화를 하고 있는 박 전 대표에 대한 불만이 크고 박 전 대표 진영에선 '화합'을 내세웠던 이 후보가 정작 '박근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선을 승리했지만 당을 장악할 만한 결과를 만들지 못한 이 후보 진영, 패배했지만 정치적 입지를 더 키운 박 전 대표 진영 간 힘의 기울기가 팽팽한 탓이다. 이 후보 진영에 대한 불만이 크지만 '일단 지켜보자'는게 그간 박 전 대표 진영 입장이었다면 이번 박 전 대표의 불만표출은 양 진영 충돌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이런 이명박-박근혜 양 진영 간 분열은 범여권이 가장 반색하는 재집권 시나리오다. 통합신당 내부에선 여전히 "박근혜쪽이 이대로 그냥 있겠느냐. 저쪽도 대선 전 내부문제가 터질 것"이라며 한나라당의 분열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 해답이 보이지 않는 지지율을 갖고 있지만 빠르게 단합하고 있는 범여권, 고공행진을 하고 있지만 분열조짐을 보이고 있는 한나라당의 현 상황은 지금의 '이명박 대세론'을 뒤집을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