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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선후보, 그리고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선두를 달리는 정동영 후보가 4일 부산국제영화제에 나란히 참석해 귀빈실에서 조우했다. 어쩌면 본선에서 다시 만날 가능성이 높은 이들 세 후보는 '비정치적인' 자리에서 첫 만남을 갖고 인사를 나눴다.
이날 부산·경남 민생 탐방에 나선 이 후보는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에서 열린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PIFF)' 개막식에 참석하고, 개막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행사장을 찾았다. 이 후보가 먼저 귀빈실에서 박관용 전 국회의장, 안경률 한나라당 부산시당위원장, 권철현 한나라당 의원 등과 인사를 나누고 환담하던 중 정 후보가 뒤늦게 들어서면서 맞닥뜨리게 됐다.
정 후보는 박 전 의장과 대화를 나누던 이 후보가 앉은 자리 뒤에서 다가서며 "이 후보님, 오셨네요"라고 인사를 건넸고, 이 후보는 "듣던 목소리다"며 뒤돌아 서서 악수했다. 정 후보는 "축하드린다"고 말했고, 이 후보는 정 후보가 경선 1위인 점을 의식해 "내가 축하해야 되겠구만"이라고 답했다. 두 인사는 잠깐 인사를 나눴을 뿐 금방 자기 자리로 돌아가 등진 상태로 각자 상대와 이야기를 이어갔다.
정 후보는 '살이 좀 빠졌다'는 기자들의 말에 "경선하면 빠진다"며 퉁명스럽게 받았으며, 당 경선 사태에 대한 질문에는 취재진 다수가 한나라당 출입기자인 점을 거론하면서 "관심사에 들어가느냐"며 답을 피했다.
뒤이어 도착한 권 후보와 이 후보의 만남은 달랐다. 이 후보는 먼저 일어나서 "축하드린다"고 손을 내밀었고, 권 후보는 "진보, 보수가 딱 만났다"며 웃으며 자리를 함께 했다. 권 후보가 지난 대선에서도 후보로 나섰던 점을 의식하며 박 전 의장이 "후보는 평생하게 됐다"고 말을 던지며 양측은 10여분가 이어진 대화 동안 묘한 신경전이 이어졌다.
박 전 의장의 말을 받아 권 후보가 "이번에는 후보 끝내야죠"라고 하자, 이 후보는 질세라 "본인이 끝내고 싶다고 끝내지느냐"고 되받았다. 두 후보의 '나이따지기'도 눈길을 끌었다. 권 후보가 이 후보에게 "41년생이더라"며 동갑임을 내비치자 이 후보는 곧바로 "몇월이냐"고 물었고, 결국 같은 해 같은 달(12월)인데 이 후보(19일)가 권 후보(22일)보다 사흘 빠른 것으로 정리됐다. 이 후보는 "됐어. 확실히 내가 위구만. 나한테 꼼짝 못 하게됐다"고 못박으려 했고, 권 후보는 "3일인데"라며 못마땅하다는 듯 농담을 던졌다. 이 후보는 이에 "3년 아래보다 3일 아래가 더 무서운 것"이라며 거듭 자신이 '위'임을 강조했다.
진보, 보수 진영의 대표 주자로서 신경전도 볼만했다.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이 많이 보인 데 대해 권 후보가 "안그래도 독주하는데 대부대가 오니 위세에 꼼짝 못하겠다"고 엄살을 떨었고, 박 전 의장이 대신 나서 "기세워야지, 기죽는 소리하면 되느냐"고 말했다. 이 후보가 "출신은 권 후보가 보수고, 내가 진보"라면서 "지금 다른 거(입장)야"라고 말했고, 권 후보는 "진짜 진보, 진짜 보수 대결 한번 하자"고 맞섰다. 세대결에 다소 밀린 듯 했던 권 후보가 "(부산·경남 지역에) 안 오셔도 되는데, 자꾸 오시나"라고 너스레를 떨자 이 후보는 "요즘 창원을 좀 가야되는데… 창원을 못 가봤다"며 권 후보의 지역구인 창원을 거론하며 역공했다. 권 후보는 "내일 같이 가자"고 즉석 제의했고, 이 후보는 "도시에 줄을 그으며 창원을 처음 만들 때 (기업시절) 참여했었다"며 친근감을 표했다.
두 사람은 '경쟁자'로서 약간 가시돋힌 말을 주고받긴 했지만, 정 후보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권 후보는 이 후보에게 "출생지가 일본이더라. 나도 일본 야마구치"라고 말했고, 이 후보는 "어릴 적(출생지)"이라면서 "중대한 발견했다. 아주 진보 동생을 얻었다"고 웃었다. 박 전 의장이 "진보는 젊은 사람을 선호해서 (후보가) 젊어질 줄 알았다"고 말하자, 이 후보는 "진보속에 노련함이 있는 것"이라며 권 후보를 치켜세웠다.
정 후보와 권 후보도 잠시 마주했지만, 의례적인 인사만 나눴을 뿐 별다른 대화는 없었다.
한편 이 후보는 말끔한 턱시도 차림으로 친분이 있는 유인촌 유시어터 대표, 나경원 대변인 등과 함께 레드카펫을 밟으며 입장했다. 영화인들을 기다리던 많은 참석자들은 이 후보를 발견하고 연예인 이상의 환호와 성원이 보내 눈길을 끌기도 했다.[=부산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