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19일자 오피니언면 '동아광장'에 이 신문 객원논설위원인 박지향 서울대 교수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새 학기가 되면 어김없이 걱정거리가 찾아온다. 수학능력이 각기 다른 수십 명의 학생을 앞에 놓고 강의 수준을 어디에 맞출지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여러 단계의 검증을 거쳐 그런대로 비슷한 수준이 모였다고 하는 대학에서조차 이러니, 평준화된 중고교의 교사들이 얼마나 힘들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여기저기 둘러봐도 교육 문제가 참으로 심각하다. 열심히 물건 만들어 수출해서 번 돈을 유학에 쏟아 붓는 현상이 현 정부 들어 심해졌고,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최근 서울대 공대가 교수 유치에 실패해 이야깃거리가 되었지만, 과학자들을 해외에 주저앉게 만드는 것은 만족스럽지 못한 연구실과 연봉 못지않게 자녀들 교육 문제다. 정부가 현재와 같은 교육 정책을 고집하는 한 해결책은 없다. 그래서 온 국민이 다 아는 바이지만 한 번 더 평준화 교육의 악폐(惡弊)를 짚어 봐야겠다.

    사실 평준화가 바람직해 보인 적이 있었고, 나 자신 소위 일류 학교를 졸업했지만 모교가 평준화되었을 때 그것에 찬성했다. 학교 서열화가 입시 과열과 일부의 특권의식이라는 심각한 사회 문제를 낳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준화 교육의 폐해가 더욱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평등한 ‘가치’와 ‘능력’ 혼동

    현 정부의 대학입시 정책은 한마디로 대학수학능력시험 등급을 축소하여 학생들의 진정한 실력이 반영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공부를 잘해도 반드시 원하는 대학에 간다는 보장이 없고,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얼마 전 교육인적자원부가 발표한 2008학년도 대입 제도에서 더욱 뚜렷이 드러났다.

    이런 입시 정책이 관철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좋은 대학에 가겠다는 생각은 고등학생들을 공부하게 만드는 가장 강한 유인(誘因)이다. 그것을 말살할 평준화 교육은 결국 모든 학생에게서 공부할 의욕을 박탈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경쟁 없는 사회’니 ‘다함께 잘사는 사회’니 하는 헛소리는 하지 말자. 이 글로벌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실력밖에 길이 없다.

    평준화 교육 정책을 받치고 있는 이데올로기는 ‘잘못 이해된’ 평등 개념이다. 현 정권의 중점사업 가운데 하나는 기득권자를 흔드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바람직한 일이다. 노력하지 않은 채 누리기만 하는 사람들은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지난 4년여간 능력 있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조차 단지 잘났고 이제껏 잘나갔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받는 역차별을 당해 왔다.

    평등을 오해하는 사람들은 ‘능력의 평등’을 당연시하면서 ‘결과의 평등’을 요구한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할 때 그 말은 인간이 평등한 ‘가치’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말이지, 평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물론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가치 없는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은 잘못이며, 그 점에서 우리는 반성할 게 많다. 그러나 각기 다른 능력과 잠재력을 똑같이 만드는 것이 평등이라고 오해하는 풍조가 널리 퍼져 있는 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개인이 각자 자신의 능력을 자신이 선택한 방법으로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이고, 그렇게 되어야 사회 전체의 복리(福利)도 증진된다.

    이 맥락에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한 말은 핵심을 찌른다. 대처는 교육부 장관 시절에 “모든 사람은 불평등해질 권리가 있다”고 선언했다. 우리의 교육부총리와는 얼마나 다른 생각인지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어쩌면 그렇게 당당하게 발언하는지, 부럽기 그지없다. 대처의 말대로, 교육은 ‘불평등해질 기회’다. 모든 사람이 똑같아지는 것은 기회가 아니다. 자질구레하게 대학의 입시 절차에 간섭하는 것은 국가의 역할이 아니다.

    교육은 ‘불평등해질 기회’

    국가가 할 일은 남보다 못한 환경에서 태어나 남보다 뒤떨어진 출발점에 있는 아이들에게도 능력에 따라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다음엔 각자의 능력과 노력에 맡겨야 마땅하다. 지금의 평준화 교육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제 대통령 후보들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경제 살리기 못지않게 중차대한 교육에 대해 후보들이 어떤 구상을 하고 있는지 듣고 싶다. 국민은 지금, 평준화에 대한 망상을 떨쳐버리고 제대로 된 교육 정책을 제시하는 후보에게 표를 줄 준비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