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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2일 사설 '이 정권은 부끄럽지도 않은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새 시대의 장남이 되고 싶지만 구 시대의 막내인 것 같다며 한탄한 적이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는 그 축에도 끼일 자격이 없다. 전임자들은 폭력과 부정과 부실이 있었지만 나라의 권위를 땅에 처박지는 않았다. 국가가, 정부가, 이렇게까지 조롱거리가 된 적이 한국의 현대사에는 없다.
등산보다 하산이 어려우며, 등산 때 그리도 소동을 일으켰으니 하산이라도 잘 해 달라고 우리는 수차례 당부했다. 그런데도 노무현 권력은 막무가내다. 권력에 취해 나라를 총체적으로 결딴내고 물러갈 심산인 것 같다. 아니 물러가지 않으려고 애를 더 쓰고 있으니 나라의 장래가 걱정이다. 대통령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국민을 기만한다. 불륜에 빠진 제1의 정책참모는 대통령을 속이고, 과잉에 빠진 제1의 정보참모는 자신의 ‘아프간 쇼(show)’가 무엇이 잘못인지 아직도 모른다. 대통령의 민주화 동지라는 참모는 지역에서 거간꾼 노릇을 하고, 장관은 선거판으로 튀어버린다. 대통령의 총리·장관 출신들이 주동이 되어 만든 당은 표 계산도 못해 망신을 샀다. 세계 13위 경제대국의 공무원들이 재정수지를 17조원이나 잘못 계산했다. 정권은 이렇게 돌아가는데 무대 뒤편에선 사이비 홍보 조종자들이 기자실을 때려 부수고 있다.
도대체 문제는 어디부터이며 그 끝은 어디인가. 난맥의 뿌리는 국가적 리더십이 없다는 것이다. 국가지도자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지난 4년 반의 해묵은 숙제지만 고질병은 반 년도 안 남은 임기 말에 더 도지고 있다. 대통령은 사려와 지식이 없는 경박한 언행으로 문제를 만들어 왔는데 하산길에도 도통 자제할 생각을 않고 있다. 잘못된 것은 모두 신문 탓이었다. 그는 신문만 비난했을 뿐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생각을 못했다.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에 “소설 같다”고 했는데 정권의 마지막 장면이 소설이 되고 있다. 대통령은 그동안 받아 든 시험지마다 부실답안을 작성했다. 마지막 시험시간, 그는 시험을 포기하는 학생 같다.
대통령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대통령을 상수(常數)로 놓고 참모나 고위직만이라도 정권을 책임진다는 각오를 다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윗사람이 흔들리니까 정권과 정부도 함께 흔들린다. 장관실에서, 청와대 2인자는 100통이 넘는 불륜의 편지를 쓰면서 공직자 운운하는 기막힌 세상이 되었다. 우리 정부 역사에서 이렇게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적은 없었다. 총리를 지낸 사람이라면 장관직을 버리고 캠프로 달려오겠다는 사람을 막아야 한다. 그런데도 그는 그런 탈주를 오히려 협의했다. 대(大)탈주는 대 방황을 부른다. 열린우리당을 뛰쳐나온 집단은 예비 경선과 경선 사이에서 마구 방황하고 있다.
이 정권은 철학이 없다. 민주화 투쟁을 했다면 나라를 위해서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권을 내놓을 상황이라도 나라를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실권(失權)이 두려워, 4년 반 누렸던 영화(榮華)가 달아나는 게 두려워, 벌벌 떨면서 정신을 잃고 있다. 수구반동이라며 한나라당을 저주했던 그들이 권력을 놓치기가 무서워 오히려 더 부패하고 더 반동이 되었다. 청와대 386 참모의 부패상이 이를 증명한다. 권력의 자리는 언제나 팽팽한 견제와 감시를 해야 한다. 그런 일을 하는 것이 국가 조직이다. 이 정부 들어 그 기강이 모두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나라는 철부지들의 권력 놀이터가 되어 버렸다. 철학과 자제력을 상실한 권력은 국민이 통제하는 수밖에 없다. 사법당국이 정말 정신차려야 한다. 부산에서 거간꾼 정치가 어떻게 벌어졌는지, 다른 지역에는 유착이 없는지, 신정아의 뒤에 다른 몸통은 없는지, 밝혀내야 한다.
서울의 청와대 안팎에서는 소극(笑劇)이 벌어지는데 경남 봉하마을에는 대통령의 저택이 쑥쑥 올라가고 있다. 대통령은 담을 높게 쌓아야 할 것이다. 퇴임 후 국민의 원성이 넘어오지 않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