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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11시 20분경, 어제 나는 사고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한 승객을 앞좌석에 태우고 내리막길을 내려가던 때였다. 이곳은 횡단보도를 경계로 그리 높지 않은 작은 언덕을 형성하고 있는 지역으로 횡단보도를 지나서야 내리막길의 전방을 확인할 수 있는 사각지대이기도 하다. 그만큼 상황 여부를 불문하고 각 운전자가 특히 주의를 해야 하는 지점이었다. 그러니 사고결과에 대한 긴 변명은 구차한 것이 될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80km가 제한속도이긴 하지만 단속 카메라가 있는 지역이므로 항상 더욱 속도에 신경 쓰며 지나치던 지역이었다. 바로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집에서 얼마 되지 않는 거리를 걸어 나오면 있는 왕복 6차선 대로였다.
횡단보도에 있는 신호등의 색깔이 녹색이었기 때문에 주행하던 모든 차가 그대로 그곳을 통과했다. 나 역시 2차선을 잡아 막 횡단보도를 넘어섰을 때였다. 그 순간 2차선에서 앞서가던 다른 한 택시가 차로에 그대로 정지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간격은 100여m 정도. 당연히 다른 차와 마찬가지로 주행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차가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그냥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야간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빨리 인식하기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맨 바깥 차선 3차선도 아닌 2차선에 차가 서 있을 것으론 예상하지 못했었다. 길가에 서 있는 승객을 태우려 하다가 3차선으로 차들이 진행하니 그 차들이 지나치길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사고 후 순간 솟아나는 화로 그런 어리석은 행위를 한 것을 강하게 힐책하려 하다가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결과를 놓고 잘잘못을 따져보아야 아무 소용없는 일이기도 했지만, 어려운 근로환경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그런 행동을 할 가능성이 상존해 있는 택시기사들의 악조건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황이야 어떠했든 사고를 피하지 못한 나의 잘못도 특별히 모면할 수는 없는 일이었기도 했다.
“어? 저거 그대로 서 있잖아!”
승객과 거의 동시 급박한 상황을 판단하고 소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 급브레이크를 밟았으나 내리막길이었기 때문이었는지 차는 그냥 미끄러져 내려가기만 했다.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아찔한 상황에 멍멍한 상태만 지속되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순간이었다.
정신을 차려 돌이켜보아도 쓰라린 아픔을 남긴 사랑의 첫 경험마냥 복잡한 마음의 상태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도 내 인생의 첫 경험이었으니 별반 다를 것은 없을 것이다. 인생을 아무리 조심해 살아간다 하더라도 현실에 생겨나는 충돌을 때론 모면할 수 없으니 같은 이치일 것이다. 마음을 다독여 액땜했던 것으로 삼기로 했다.
택시 운전대를 잡았던 데에는 그 가운데에서 긍정적인 삶의 희망을 발견해보고자 했던 이유가 컸었다. 누구나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오직 내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나만의 희망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크고 작은 여러 일들을 경험해왔다. 그것이 기쁜 일이었건 나쁜 일이었건, 내가 이 길을 걷지 않았더라면 경험하지 못했을 그 모든 것들이 또다시 ‘후회할 수 없는 아쉬움’들을 남겨내고 있다.
부모님들이 더욱 연로해 가시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인생을 새롭게 배워가고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91세, 엄마가 82세시니 세월의 빠름은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충분하게 가르쳐주고 있기도 하다. 나는 버릇없는 막내였기 때문에 아직도 엄마라 부르길 서슴지 않고 있다. 그분들과 일찍이 헤어졌다면 나는 더 많은 어리석음을 깨닫지도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분들이 계시기에 때로는 미래의 내 모습들을 바라보기도 하면서 한 순간 한 순간을 되돌아 보아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인생의 매 순간들이 미래에 닥쳐올 ‘이별을 위한 준비’라는 평범한 사실을 더욱 깊게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것을 소재로 하여 ‘이별을 위한 준비’라는 타이틀로 내가 느끼는 감상을 작은 글로 꾸며보려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글을 써 가면 써갈수록 마음에서건 실제에서건 예상 못한 현상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무언가 모를 것들이 자꾸 내 마음의 상태를 그렇게 만들어갔는지도 모른다. 또는 어리석은 내 마음이 스스로 그렇게 빠져 들어가게 하고 있었을지도 알 수 없다. ‘이별을 위한 준비’의 타이틀의 글을 마무리하려고 몇 번이나 책상 앞에 앉아 망설이기를 반복했었다. 내 스스로가 미몽 속에 사로잡힌 듯 어떤 낱말을 사용하여 표현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것을 주저하게 하고 있었다.
모든 만남에는 당연히 헤어짐이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통해 스스로 간직하고픈 마음을 이야기하려 했을 뿐이었다. 미신에 사로잡히는 것이라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이 글을 완성하기보단 나머지를 그냥 내 마음속에 묻어놓기로 작심하게 되었다. 그래도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가꾸어가야겠다는 생각은 더욱 자세하게 정리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할 만도 할 것 같다.
그동안 택시 운전을 하며 보이지 않던 사회의 단면들을 통해 현실은 어려웠어도 인생의 소중한 자산들을 차곡차곡 쌓아 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강한 분노가 솟아오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더 정답게 대해주지 못한 아쉬움도 남아 있기도 하다. 밤새 운전을 하고 새벽에 들어와 책상 앞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버티기도 여러 날이었다. 이번 사고로 주춤하는 마음이 더 컸기도 했지만 가던 길은 계속 다시 가 볼 생각이다. 그 안에서 또 새로운 것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모든 것은 다 내 마음 속에 있을 것이다. 한낱 가치 없는 쓰레기도 내 마음속에서는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보석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 테니 그 마음을 찾아 또 떠나보아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