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일자 오피니언란에 실린 이신문 정치부 차장대우 박두식씨가 쓴 <조순형·박상천의 외로운 싸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통합민주당의 조순형 의원과 박상천 대표는 정치권에서 고집불통으로 소문난 사람들이다. 조 의원은 바른 말만 골라서 한다고 해서 ‘미스터(Mr.) 쓴소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정치권에서 바른 말만 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깐깐한 성격이라면 박 대표도 조 의원 못지않다. 그는 무슨 주제가 됐든 늘 첫째, 둘째, 셋째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그만큼 자기 논리와 일관성을 중시한다. 정치권에서 일관성을 지킨다는 것도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조 의원이 만 72세, 박 대표가 69세로, 같은 대학(서울대 법대) 선·후배 사이다. 조 의원은 올해로 정치 입문 26년을 맞은 6선(選) 의원이고, 박 대표는 4선 의원 출신이다. 상황 논리에 휩싸이거나 누구 말 한마디에 좌우되지 않을 만한 연륜과 경력을 갖춘 사람들이다.

    범여권 입장에서 두 사람은 공적(共敵)에 가까운 존재들이다. 범여권을 하나의 정당으로 묶어 그 틀에서 단일 대선 후보를 선출하겠다는 구상이 두 사람의 ‘고집’에 걸려 삐거덕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범여(汎與) 신당에 참여하길 거부하고 있다. ‘잡탕 정당은 안 된다’는 게 그 이유다. 정당은 이념과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인데, 범여 신당은 이런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신당을 추진하는 사람들조차 두 사람의 주장에 대해“말은 맞지만…”이라고 한다.

    그러나 주장하는 바가 옳다고 해서 따르는 사람이 많은 것은 결코 아니다.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대세(大勢)를 추종하는 게 정치권의 생리다. 범여권 입장에서 두 사람은 대세에 맞서는 성가신 존재인 것이다. 이들은 요즘 고립돼 있고, 범여권 안팎의 압박은 상상을 초월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함께 당을 해온 동료들도 두 사람 곁을 떠나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은 버티고 있다. 더욱이 범여 통합의 발원지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이다. 두 사람이 줄곧 정치를 해온 민주당의 창업자가 M&A(인수·합병)를 하라고 하는데, ‘회사를 지키겠다’며 저항하는 모양새다. 그렇기 때문에 “조순형·박상천은 왜?”라는 질문을 놓고 온갖 설이 난무하고 있다. 더 큰 지분을 얻어내려고 정치 게임을 하고 있다는 얘기부터 ‘노욕(老慾)의 화신’ ‘꼴통’이란 인신 공격성 비난까지 나오고 있다. 여권의 한 3선 의원은 “태풍이 부는데 집문서와 가재도구 같은 것들을 챙기려 하고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이 깐깐하게 원칙을 따져온 것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무균 청정지대에서 생활한 것은 아니다. 두 사람에게도 나름의 정치적 계산과 욕심이 있을 것이다.

    지난 4월 민주당 대표로 선출된 뒤 박상천 대표는 “제대로 된 중도 정당을 꼭 해보고 싶다”는 말을 하곤 했다. 선거 승리만을 위해서 이합집산하는 정당이 아니라 한나라당의 보수 노선과 경쟁·협력하는 중도 정당을 만들고 싶다는 얘기였다. 조순형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국정 실패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줄곧 해 왔다. 그래서 ‘과거 불문형’ 범여 통합에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들의 외로운 싸움이 정치적 성공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이다. 범여 신당이 뜨면 이들이 이끄는 민주당은 8석 규모의 초(超)미니 정당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대선 후보 조순형’의 앞날도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범여권이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라면…’이라는 논리로 편법·꼼수에 매달릴수록 두 사람의 존재감은 더욱 커져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