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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복더위가 주변의 기운을 눌러가니 식도락가들의 발걸음이 바빠지나 보다. 초복 때였다. 이른 초저녁 한 승객이 뒷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 승객은 어둠을 안주로 하지 않은 술 탓인지 순순히 전과사실을 자복해왔다. 훤한 시간에 술 냄새를 퍼뜨리는 것을 못내 미안해하는 솔직한 음주승차자였다. 나는 술 냄새를 전혀 맡지 못했는데도 말이다. 그는 그러는 동시에 멀지 않은 장소에 가는 동안 앞에 줄지어 있는 차량들을 손가락질하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여자 친구와의 약속 시간에 이미 30분이나 늦었다는 것이었다.
요새는 친구를 호칭하며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기혼 남녀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들은 대부분이 동창생의 관계에 있는 사람들일 테지만, 그 관계가 모호하게 보이는 경우도 가끔은 생겨난다. 졸업 후 정기모임으로 관계가 유지되어 오기도 하고, 발달한 통신이 끊어졌던 예전의 기억들을 다시 회생시키기도 한다. 그러니 요즘 세태에 ‘남녀 간에 친구가 될 수 있나’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정상적인 인간대접 받기를 포기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부부도 인생친구일 테니 친구의 의미를 그리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약속장소에 차를 세우니 기다리고 있어야할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못내 초조해하며 두리번거리는 그 승객더러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을 것 같은 여자 친구에게 깊게 반성하고 있음을 전화로 알리도록 했다. 이런 경우 여자들의 심리야 기본 상식일 테니까 말이다. 만남의 거간꾼 노릇까지 하게 된 것이다. 역시 첫 번째에는 받지 않다가 두 번째 전화를 받고 그 여자 친구는 무대 뒤편에서 팔자걸음을 힘차게 내두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차에 오르자마자 둘의 공방이 시끄럽게 터져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소음공해에 말초신경이 슬슬 곤두서왔다. 찬물을 끼얹고 이성을 회복시켜야 했다.
“어디로 갈까요?”
“네? 네~에... 너 천엽 먹고 싶다고 했지? 도살장으로 가주세요.”
도살장 인근에는 저렴하게 각 부위를 골라서 먹을 수 있는 음식점들이 많이 있다. 50 초반쯤으로 보이는 그들은 장소를 말하자 이번에는 다른 동창들에 관한 이야기로 마음껏 소음을 발산하며 식욕을 돋아 대고 있었다.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날이 동창회 모임 날로 남자는 그곳에 참석했으나 여자는 누군가가 거슬렸는지 참석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대신 예정시간보다 한 시간 서둘러 그 남자친구를 불러내 따로 만나고 있는 것이었다. 남자가 모임 자리에서 있었던 일들을 일일이 보고해주고 있었다. 아마도 둘은 특별히 친밀한 동창관계였던 모양이었다. 도살장에 이르기도 전에 이미 천엽의 맛을 다 보았는지 둘은 다시 무엇을 먹을까에 대해 심각하게 토의해 갔다.
“야, 너 돼지 먹을래?”
“천엽 안 먹고? ... 그럼 오리 잘 하는 곳 있는데 우리 오리 먹으러 갈까?”
“오리? 야, 그러지 말고 개 먹으러 가자... 아니야. 염소는 어때?”
그러다 모든 짐승들을 다 섭렵하며 먹어 치울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들은 내내 천엽을 제외하고는 식재료로써의 명칭이 아닌 동물의 이름을 직접 나열해갔다. 그것을 듣고 있으려니 모든 동물 중 가장 강한 식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들 인간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일어났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못 먹는 거야? 호랑이와 사자가 환생했나? 짐승들을 다 잡아먹으러 다니게...’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혼자 웃음 띤 생각을 해보았다.
“염소는 냄새 안 날까? 그러지 말고 우리 그냥 천엽 먹으러 가자...”
야지를 주름잡는 맹수에서 어느 정도 인간적 이성을 회복한 모양이었다. 결국에는 통째로 먹는 것을 포기하고 천엽으로 그날 먹을거리에 대한 토의의 결과를 맺고 있었다.
가끔은 현실의 세상이 인간이 아닌 다른 짐승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면 우리 사람들의 삶은 어떤 상태를 이어가고 있을까 하는 우스개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러다보면 인간만큼 탐욕이 큰 존재도 없을 것이란 생각에 이르게 되고, 그 탐욕이 사람들의 사고를 제한시켜 결국에는 좁은 인생 속에서 허덕이다 그것의 어리석었음을 깨닫지도 못한 채 삶을 마감해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기 마련이다.
배를 꽉 채워 더 이상 다른 것을 들여 놓을 공간이 없을 때에도 새로운 욕심에 의해 꾸역꾸역 그것을 집어넣을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으면 먹은 것을 토해내고서라도 다른 것을 집어넣고 또 토해놓고 다시 먹을 정도로 인간의 탐욕은 그 끝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로 인한 갈등은 사회적 관계는 물론 가족관계에서까지 많은 문제를 만들어왔을 것이다. 그것을 인식하는 사람, 그렇지 못한 사람들 모두 그것들로 인해 갈등하며 인생의 끝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