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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잠이 깼기 때문일까. 아직 어둠이 채 다 가시지 않은 까닭도 있었겠지만, 시야가 제한되면서 사물의 식별이 불분명해 빠른 속도를 낼 수 없었다. 한기가 느껴지며 몸이 가늘게 떨렸다. 안과 밖의 공기 차가 앞 유리를 반투명의 상태로 만들어갔다. 공기를 순환시키기 위해 차창을 내렸다.
‘이게 무슨 소리지?’
바퀴가 지면과 마찰하며 내는 소리가 규칙적이지 않고 무언가 이상한 소음이 발생하고 있었다.
‘바퀴에 돌이 끼었나?’
‘아니야. 땅바닥을 치는 소리 같기도 한데? 펑크가 났나? 잠들기 전까진 아무 이상 없었는데? 그럼 내가 잠자는 사이 누군가가 바퀴에 펑크를 냈단 말이야?’
불안감보다는 몸도 피곤한 이른 아침에 골치 아픈 일거리가 생기지 않았길 바라는 마음이 더욱 컸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잠이 덜 깨서 균형 감각이 무뎌져 뭔가 판단을 잘못 하고 있을 거야...’
억지로 마음을 달래는 기대를 하면서 길가 한쪽에 차를 세웠다. 차를 한 바퀴 돌며 우선 공기압 상태를 점검했다. 바라던 대로 다행히 타이어는 팽팽한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역시 잠이 덜 깼던 거야. 이제 그만 정신 차리고 집으로 돌아가야지?’
애꿎은 담배 한 개비의 형체를 연기를 피우느라 망가뜨려가며 나 자신을 타일렀다. 다시 차에 올라 신경을 곤두세우고 바퀴를 굴려갔다. 그런데 조금 전처럼 똑같은 소리가 귓가에 전달되면서 애써 세워놓았던 신경을 어지럽혀 갔다.
‘분명히 타이어에는 아무 것도 없었고 펑크가 난 것도 아니었는데... 잘못 듣는 것도 아니잖아...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지? 도로 상태가 나빠서 그런 건가?’
조금 더 속력을 높여서 달리다보니 아까보다는 더 강한 마찰음과 함께 이번에는 바퀴가 꼭 축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것처럼 지그재그로 회전하는 진동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현상에 대한 확실한 느낌이 불안감을 증폭시켜 왔다. 펑크가 났다 해도 그런데 만일 바퀴가 축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라면 더욱 위험한 일이 아닌가. 이제는 정신이 번쩍 들어 덜 깬 잠을 핑계 댈 것도 없었다. 고삐를 힘차게 당겨 또다시 차를 세웠다.
이번에는 눈을 껌벅거리며 네 바퀴의 정렬 상태를 확인했다. 두 번 세 번 을 살펴보아도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였다. 바퀴에 발을 얹고 건드려도 보았다. 반동에 의해 몸이 뒤로 이동할 뿐, 바퀴는 제자리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라이터를 꺼내 불을 밝혀가며 바퀴의 어두운 부분까지 샅샅이 뒤져 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거야 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닌가. 분명히 소리는 들리고 불규칙적인 진동이 느껴지는데 아무리 눈을 씻고 살펴보아도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눈으로 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도로 바닥을 발바닥으로 훑어가며 표면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닌 새벽에 웬 해괴한 짓인지, 속 모르는 사람들이 보았더라면 이상한 사람의 행동으로 보았을 짓들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그렇게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치로 설명하지 못할 일들은 언제나 생기기 마련이니까.. 아무리 봐도 이상이 없잖아? 괜찮을 거야...’
망설여지는 마음을 섣부르게 달래며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들리는 소리, 느껴지는 진동은 모두 무시하기로 했다. 소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식으로 변해있었던 것이다. 눈앞에 귀신이 나타났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거창하게 상상할 필요도 없이 그야말로 귀신을 완전히 무시하거나, 그 귀신에 놀라 그냥 까무러치는 방법 밖에는 별다른 도리가 있을 리 없다.
그러나 그렇게 말처럼 쉬운 것이라면 귀신이 지금껏 우리 앞에 행세하며 나타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 초 일 초 시간이 흐르면서 들리는 소리와 불안한 마음을 재촉하는 진동은 초기의 의젓한 마음과는 달리 꼭 감은 두 눈을 손으로 감싸며 괴성을 질러내야만 하는 상태로 몰아갔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차를 세웠다.
‘도대체 뭐 이런 것이 다 있어? 이거 완전히 귀신에 홀린 것 같잖아... 정말 골치 아프게 생겼네...’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마음을 냉정히 침착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도 살폈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던 그 무엇이 있을는지도 모를 테니까 말이다.
‘어? 이게 뭐야?’
다시 바퀴들을 살피다 오른쪽 앞바퀴에 무언지 모를 하얀 것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게 언제부터 여기에 붙어 있었던 거야? 이 정도의 크기라면 지금까지 눈에 띄지 않았을 수가 없는데... 어? 그런데 이건...’
바퀴에서 떼어낸 그것은 바닥이 붉은 색으로 코팅 된 흰 장갑이었다.
‘하필이면 손이...’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순간 무언가가 빠르게 머릿속을 지나가며 벌레가 기어가고 있는 것처럼 피부 끝이 곤두섬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주차장에서부터 붙어 왔던 것이었으리라. 주차할 때, 공교롭게도 바퀴가 장갑을 깔고 올라서게 되었고, 차의 무게로 눌려 고무끼리 착 달라붙었던 경우였을 것이었다. 발견하기 전까지 차에서 내려 확인할 때는 매번 장갑이 붙어 있는 부분이 도로면과 맞닿아 있어서 눈에 띄지 않았을 것이란 추측을 했다.
그것이 아니라면 주차장에서 잠결에 보았던 그 남자가 끼고 있던 장갑이라고 해야 할까? 그 남자는 차가 자신의 손을 깔고 올라섰기 때문에 내가 잠자고 있는 사이 운전석에 앉아 스스로 차를 움직이려고 했던 것이었던가? 내가 잠이 깨 차를 후진시켜 이동하자 차바퀴에 매달려오다, 날이 밝아오니 붙어 있는 자기의 장갑은 미처 가져가지 못하고 형체 없는 몸만 빠져나간 것이었나? 아니면 잠을 완전히 깨고 운전해 갈 수 있도록 나를 배려해 그냥 붙여 놓고 간 것이었던가?
아무튼 그 장갑으로 인해 먼동이 트기 전 이른 아침의 한참의 시간을 길거리에서 맥없이 방황해야만 했다. 그것은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 시간 동안 내 인생에 있어 앞으로 나아갈 바를 좌지우지한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었다. 그렇게 우리들 인생도 ‘보이지 않는 손’의 영향을 받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웃음 짓고 또 때로는 눈물지으며 지금의 시간까지 달려왔을 것이다. 그것과의 만남을 우리는 행운이라 부르기도 했고, 불행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것이 악연이었든, 선연이었든, 우리들 인생에 필연을 만들어내며 옛날을 추억하면서 느끼는 아쉬움들을 차곡차곡 쌓아왔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