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1일자 오피니언면 '시론'에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가 쓴 <'5년 정부'인가 '50년 정부'인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정부의 속성을 나타내주는 특징들이 많지만, 자신의 임기를 넘어가는 정책과 시스템을 짜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다. 그 속성은 최근에도 그칠 줄 모른다. 5년 임기 중 잔여임기가 5달 남짓한데, 50년 정도의 구속력을 갖는 정책을 만들겠다는 권력의 의도가 표출된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청와대는 의견수렴 중이라고는 하나,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으며 종전(終戰) 선언을 하는 것이 의제 중 하나라고 밝혔다. 또 얼마 전 정부는 논란 많은 기회균등할당제를 다음 정권때인 2009년 대학입시부터 확대하여 입학정원의 11%로 늘리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노정부 마지막 해인 금년 초부터 쏟아낸 정책들을 보면 마치 차기 정부가 들어선 듯한 착각을 갖게 할 정도다. 비전 2030이나 2단계 국가균형발전계획, 병역개선안 등이 그렇고 또 연임제 개헌을 하겠다고 얼마나 정국을 뒤흔들었는가. 한마디로 이런 의제들은 임기 말을 코앞에 두고 있는 5년 단임정부로서는 ‘주제넘은’ 것들이다. 차기 정부나 차차기 정부의 몫을 가로채고 있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니 말이다. 차기 정부나 차차기 정부는 또 다른 ‘선출된 권력’으로서 민의를 수렴해 자신의 정책을 개발할 권한이 있는 것인데, 그러한 고유 권한을 마다하고 노정부의 정책을 계승해야 할 의무라도 있단 말인가. 북한에는 사망한 김일성의 정책을 충실히 이어가는 ‘유훈(遺訓) 통치’가 있다고 하지만, 대한민국판 ‘유훈정치’가 있어서는 곤란하지 않은가.

    그동안 노정부는 효력이 5년 이상 가는 정책을 만드는 데 주력함으로써 나라의 미래 운명까지 가늠하려 하였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행정복합도시건설을 강행했고 또 많은 논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으로부터 전시작전통제권을 돌려받기로 했다. 하기야 가렴주구(苛斂誅求)를 방불케 할 정도로 중과세(重課稅) 위주의 부동산대책을 만들어놓고도 헌법처럼 뜯어고치기 어려운 것으로 만들었다고 자랑하지 않았던가. 중요한 것은 이러한 태도가 5년 단임의 헌법정신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난히도 ‘아마추어정권’이라고 비난을 받아온 정부가 이처럼 장기적 의미를 갖는 정책들을 서둘러 고집스럽게 결정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다음 정부의 몫까지 선취하려는 태도는 후대를 걱정하는 노파심 때문인가. 다음 정부의 능력이나 의도에 신뢰를 할 수 없다는 의미인가. 아니면 자신의 정책이 모래밭의 그림처럼 파도가 들이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를 걱정해서인가.

    기존의 것들은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결과”라고 보았기 때문일까. 처음부터 노정부는 아예 ‘이스태빌리시먼트’(기성 질서)를 바꿈으로써 판을 뜯어 고치려고 작정했던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의 것만은 정의가 승리한 신기원으로 평가받으려고 했는지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욕심이 과한 것이다. 자신의 것만 옳고 다른 것은 부정의하고 틀렸다고 보는 것은 권력의 독선이고 오만일 터이다.

    일찍이 중국의 진시황은 자신의 권력을 영원불변의 것으로 만들고자 동남동녀(童男童女)를 보내 불로초와 불사약을 찾았다. 그러나 그 허황된 시도는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지금 혹시 노정부는 ‘현대판 불로초’와 ‘불사약’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남의 정책이나 선대의 정책들은 모두 불의라고 낙인찍어 단명하기를 바라는 반면, 자신의 정책만은 정의롭다고 생각하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영원하기를 기대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허위의식이고 중대한 착각이다. 현대판 불로초와 불사약은 없기 때문이다. 부디 주어진 임기 내에서 가능한 정책을 구상하고 그것을 충실히 마무리하겠다는 결의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노정부는 산마루에서 ‘지는 해’를 보는 것이지 ‘뜨는 해’를 보고 있다는 착각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