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밤중에 회식을 마치고 귀가한다는 한 청년이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신입이라 항상 상사들 집 근처에서 회식하다보니 자신은 언제나 늦은 시간에 먼 길을 되밟아 집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가벼운 불만부터 늘어놓았다. 그러다 뜬금없이 한 마디를 내게 물어 왔다.

    “아저씨, 귀신 본 적 있으세요?”

    귀신? 그렇잖아도 감기는 눈을 애써 참아가며 눈꺼풀에 쥐가 나도록 힘을 주고 있는 형편인데, 오히려 술도 마시지 않은 것 같은 사람이 나를 대신해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격이었다. 아마도 인적 드문 한가한 길이 문뜩 예전의 기억을 건드렸던 것 같았다. 귀신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꺼낸 이야기리라 생각하고 그 기분을 맞춰 주기로 했다.

    “눈앞에서 직접 본 경우는 없었지만, 실제로 보았다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귀신이 있기는 있나 봐요.”
    “네! 저는 직접 봤어요.”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이왕 터진 말문인데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충실하게 장단을 두드려주며 흥미진진해 하는 표정까지 만들어냈다.

    “정말이에요? 어떻게요?”

    한 백화점의 경비보안 직을 담당했던 이전 직장에서의 경험을 말해가는 청년의 입이 가쁘게 속도를 더해갔다.

    “처음에는 귀신이 있다는 선배들의 말을 믿지 않았어요. 그러니 그것을 제가 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죠. 그런데 한 날 야간근무를 할 때였어요. 순찰을 마치고 자리에 비스듬히 앉아 잠시 잠을 청했는데 누군가 뚜벅뚜벅 걸어가는 구두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놀라서 얼른 눈을 떠 살펴보니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출입문도 없는 막다른 곳으로 걸어가고 있더라고요. 황급히 일어나 동료직원에게 무전기로 연락을 취하면서 뒤를 쫓아갔었죠. 그런데 모퉁이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어요. 눈으로만 본 것이 아니라 구두 발자국 소리도 분명히 들었거든요...”

    말하는 청년의 표정이 진지하고 그 목소리에 긴장이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자신만큼은 귀신을 본 것으로 확실하게 믿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 함께 있지 않은 사람의 마음이야 그 말을 다 듣고 냉정하게 콧방귀를 끼어댄다 해도 탓할 수는 없다. 그럴 때면 귀신은 곡을 할 것이고, 그 귀신을 보았다고 말한 사람의 목소리는 분노의 마음으로 더욱 커져만 갈 것이다. 소중한 경험을 정성껏 말해준 사람을 실망시킬 수는 없었다. 말을 들은 대가로 크게 놀라는 표정을 지어보여야 했다. 그런 것이라면 나는 어제도 보았는데...

    요새는 이모저모로 피곤이 누적되어 심신이 균형을 상실하고 있는 모양이다. 몸이 피로하니 정신도 제 가닥을 바로 잡지 못하고, 정신이 육체를 놓아버리니 몸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 마음대로 갈 지 자를 걸어대고 있다. 아무리 피곤했어도 운전 할 때만은 긴장상태를 놓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것도 다 증발해버린 형편이다. 닭이 졸다가 힘없이 제 부리를 땅에 처박듯, 사르르 눈꺼풀을 봉하고 풀어헤치길 반복하듯이 모든 것이 항거불능의 상태로 빠져들고 만다. 보통의 경우는 한 삼십분 격렬하게 저항하면 그만이었는데, 어제 새벽녘에는 몇 시간 내내 그 현상이 나를 계속해 괴롭혀대고 있었다.

    새벽 세 시나 되었을까? 한 승객이 최전방 변두리 한적한 지역으로 같이 가길 청했다. 기꺼이 동반자 되길 마다 않고 눈에 힘을 주어 차를 몰아갔다. 출발 당시 굳게 형성되어 있던 긴장이 시간이 지나갈수록 졸음에 쫓겨 달아나고 있었다. 아차, 아차 하는 순간들이 지나갔다. 순간의 방심으로 어리석은 결과를 초래할 수는 없었다. 가족들을 생각하며 잠들어가는 마음을 일깨워내기도 했다. 승객에게 쉬어가자고 청할 수 없는 노릇이었으니, 졸음운전의 피할 수 없는 위험성과 정신으로는 이겨내지 못할 육체의 한계를 또다시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모든 것들이 순간이었다. 어리석은 말이기도 하겠지만, 생과 사의 극단의 마음으로 어렵게 버텨갔다. 미리 그와 같은 상황을 예상해 절대 초래해서는 안 될 행위였지만, 졸음운전은 음주운전 이상의 위험성이 있음을 경계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하는 고백인 면도 있다. 오늘 새벽에는 그 현상을 느끼자 공원 한 쪽에 차를 세워놓고 뒷자리에 다리를 굽힌 큰대 자로 누워 잠시 졸음을 달래기도 했다. 한 번의 어리석음으로 충분해야할 일이었다.

    다행히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다다를 수 있었다. 승객이 내리자 적당한 한 곳을 물색했다. 서너 대의 차가 뎅그러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넓은 주차장이 눈에 들어왔다. 가로등 하나가 쓸쓸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곳이었다. 한 쪽 구석으로 차를 끌고 들어갔다. 긴장을 해지하자 피로감이 온 몸을 몽롱하게 만들어갔다. 뒷좌석으로 가 몸을 눕혀주니 입에서는 안도의 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규칙적인 엔진소리가 자장가가 되었을 것이다.

    금방 짧은 잠에 빠졌었나보다. 무언가의 기척에 언뜻 눈을 떴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올리니 운전석에 한 남자가 앉아있었다.

    ‘어? 저거는 뭐야? 왜 저기에 앉아 있지?’

    맨 정신이었으면 화들짝 놀라기도 했겠지만, 모든 지각이 잠결에 마비되어 있던 상태였다. ‘저거 쫓아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1초, 1초지나 눈의 초점이 회복되어 바라보니 그 자리엔 아무도 없었다. 그러고는 이내 곧 다시 잠에 빠져 들어갔다.

    이번에는 내 코가 진동하며 내는 소리가 잠을 깨웠다. 조금 전의 기억이 남아있었는지 시선은 자연스럽게 앞좌석을 향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한 남자가 운전석에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어? 저거 왜 또 왔어? ...”

    한 번의 경험이 두 번째에는 무감각의 도를 더욱 증가시켜 놓았나보다. “쫓아내야 하는데... 아니야, 그냥 놔 둬. 지가 알아서 갈 거니까...”

    시계를 보니 네 시 반이었다. 삼십분 정도를 잠 속을 헤맨 것이다. 얼른 정신을 수습해야했다. 약하게 틀어놓은 에어컨이 새벽 공기를 이슬로 만들어 모든 차창을 덮어놓은 상태였다. 눈을 비빌 것도 없이 대충 앞 유리를 닦아내고 차를 후진시켜 그곳을 빠져나왔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면서 남아 있는 잠을 쫓아버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