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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1일자 오피니언면 '태평로'에 이 신문 강효상 사회부장이 쓴 <노 대통령은 '남한산성'에서 나와야 한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건 뭐?”
“스피드! 엑스피드!”
요즘 시중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한 초고속 인터넷의 광고 문구입니다. 저는 얼마 전 조선일보 중국 취재단의 일원으로 6박7일간 중국과 마카오에 다녀왔습니다. 중국과 마카오가 변화하는 현장을 보면서 저는 혼자 이렇게 외쳤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필요한 건 바로 스피드야!” 바깥 세상은 가히 광(光)속도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중국 항저우(杭州)시는 불과 5~6년 만에 국제적 수준의 관광도시로 탈바꿈했고, 미국 스탠퍼드대 규모의 거대 대학을 뚝딱 만들어냈습니다. 중국 상인 정신의 고향이라는 원저우(溫州)시에는 자고 나면 백만장자가 탄생하고 있었습니다.
우중충한 이미지였던 마카오는 기적의 도시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에드먼드 호 행정장관은 미국 유대인 자본 11조원을 끌어들여 미국 라스베이거스를 능가하는 도시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8월에 문을 여는 베네시안호텔은 스위트룸만 3000개입니다. 현재 건설 중인 오성(五星)급 호텔만 23개,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호텔은 33개로 올해 초 1만2000개인 마카오 내 객실 숫자가 2009년에는 3만5000개로 불어납니다. 마카오는 앞으로 5년간 연평균 15%의 GDP 성장률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시설(하드웨어)보다 의식(소프트웨어)의 변화였습니다. 벤츠와 BMW가 즐비한 항저우에서 “빈부 격차가 늘어나 위화감은 없느냐”고 공산당 간부에게 묻자 “우리는 부자들의 권익을 최대한 보호한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선전의 한 호텔에서 만난 호텔 매니저는 뜻밖에도 서양여성이었습니다. 외국에서 직접 파견된 매니저가 영어로 중국인들을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마카오를 지키는 중국 인민군들은 절대 군복을 입고 외출하지 못합니다. 관광도시의 분위기를 망친다는 베이징(北京)정부의 지시 때문입니다.
저는 이번 중국 여행 도중 김훈의 장편소설 ‘남한산성’을 읽었습니다.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로 피하려던 인조가 도망칠 곳 없는 남한산성에 틀어박히게 된 것도 바로 청군(淸軍)의 ‘스피드’ 때문이었습니다. 청나라의 기병이 ‘북서풍’처럼 밀려와 강화도로 가는 길을 끊어버렸던 것입니다. 어가(御駕) 행렬이 남한산성으로 방향을 돌리자 패배를 직감한 백성들은 제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당시 조정은 적에 대한 정보도 없었고, 어디를 어떻게 지켜야 할지 전략도 없이 논쟁만 일삼았습니다.
“밖으로 싸우기보다 안에서 싸우기가 더욱 모질어서 글 읽는 자들은 갇힌 성안에서 싸우고 또 싸웠고, 말(言)들이 창궐해서 주린 성에 넘쳤다.” 작가 김훈은 남한산성에 갇힌 우리 지도층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저는 이번 중국 취재 내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생각났습니다. 지금 노 대통령은 연평균 4~5%의 경제 성장을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경쟁국들이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는 동안 ‘걸어가고 있음’을 자랑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노 대통령은 이제 안에서 싸우기를 멈추어야 합니다. 그는 당당한 중진국의 대통령입니다. 조지 W 부시, 후진타오, 에드먼드 호, 아베 신조 등 동시대의 경쟁국 지도자들과 싸워야 합니다. 4000만 우수 국민들을 병력으로 삼아 수출을 늘리고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해외로 달려나가야 합니다. 대통령이란 높은 권좌에 올라앉아 힘없는 대학을 짓밟고, 기자들의 멱살을 잡고, 헌법기관을 조롱하고, 야당 지도자들에게 침을 뱉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중국에서 만난 원저우 상인들은 60·70년대 중국에서 벌어진 문화혁명(文化革命)을 ‘재난적 사건’으로 불렀습니다. 후세 역사가들이 ‘노무현시대’를 ‘재난적 사건’으로 기록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노 대통령은 이제 ‘남한산성’에서 나와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