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3년 북송된 비전향장기수 이인모(89)씨가 16일 사망했다. 북한의 노동당 중앙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내각은 17일 공동으로 이씨의 부고를 발표하고 "전 조선인민군 종군기자이고 비전향장기수인 이인모 동지가 남조선의 감옥에서 당한 고문의 후과(후유증)로 16일 7시에 89살을 일기로 애석하게 서거했다"고 전했다. 북송 비전향장기수 1호 이씨의 사망소식이 국내에 전해지자 비전향장기수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탈북자들로 구성된 대북 단파 방송인 자유북한방송(대표 김성민)은 "북송된 비전향장기수들은 북한의 대남전략에 아주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비전향장기수는 북한의 정치를 선전하는 도구일 뿐"이라고 비전향장기수의 최근 근황에 대해 알렸다. 

    ◆북한의 현실에 실망한 이인모= '통일의 영웅'이란 칭호를 받은 이씨의 경우 김일성 김정일이 각별한 관심을 가져 조선노동당 당원증도 수여하고 북한 최고위계층만이 누릴수 있는 생활을 하도록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북한방송에 따르면 김일성은 이씨에게 당시 노동당 재정부장이던 윤기정이 살던 고급 저택과 벤츠를 선물로 줬다고 한다. 북한은 철저하게 이씨를 체제선정에 이용했으며 이씨도 '당신이 없으면 조국도 없다'를 비롯 상당수의 김일성 부자 우상화 작품들과 감옥수기를 연이어 출간하며 적극적으로 체제선전 활동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북한의 현실을 알게 된 후부터 이씨는 김일성 부자의 우상화 작품을 더 이상 쓰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북한의 현실에 실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씨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를 방문 후 "만약 내가 이 감옥에 있었더라면 34년(남한에서 감옥생활을 한 기간)은 고사하고 3개월도 못살았을 것"이라고 말해 북한당국은 이 말을 막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고 한다. 

    이씨의 김부자 우상화 활동이 중단되자 한때 남한내 북한인권 단체들은 이씨의 정치범 수용소행을 을 예상하기도 했었다. 탈북인권연대 도희윤 대표는 11일 한 토론회에서 "이씨의 활동 소식이 끊어 졌다"며 "이씨가 정치범수용소에서 사망했다는 소문과 북한이 비전향장기수들의 체제비판을 엄격히 단속하고 있다는 소식이 탈북자들과 북한 소식통들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시원찮은 비전향장기수 대우=북송 비전향장기수는 이씨뿐 아니라 DJ정권때 북송된 63명이 더 있다. 북한은 이들을 특별 대우하는 것처럼 대내외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사망한 8명을 제외하고 생존해 있는 장기수들은 정치행사 참석이나 주민들과의 '상봉모임' 명승지 참관 등으로 바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벤츠승용차와 노동당 간부의 사택을 선사받은 이씨와는 달리 생각보다 시원찮은 대우를 받고 있다고 한다. 북한은 이들에게 아파트 한 채와 생활에 필요한 가전제품들을 줬을 뿐이라고 한다. 오히려 정치적 대남 선전 도구로 이용되는 이들은 북한 당국의 엄격한 감시를 받고 있다는 소문이다.  

    정치선전에 이용되고 있는 이들을 두고 북한주민들은 "남들은 가지 못해 안달아 하는 그 살기 좋은 남조선에서 무슨 고생을 못해 여기로 왔나"라며 "여기서 살아보면 아마 정신이 들 것이다. 그 다음 천백번 후회해도 무슨 소용이 있나"라고 뒤에서 수근거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