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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짙게 깔리기 시작하는 세상엔 깜박거리는 붉은 브레이크 등들의 점멸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답답함을 숨 가쁘게 호소하고 있는 듯 했다. 솥단지에 들어 있는 요리되지 않은 음식이 그것을 안고 있는 여인의 체온으로 다 익어갈 정도일 텐데도 그 여인은 전혀 초조한 내색 없이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동안 쌓여왔던 세월 동안 물에 젖어 불은 듯 보이는 여인의 투박한 손이 초면의 어색한 부담을 날려버리고 오히려 더한 친근감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말을 이어가는 모습도 전혀 꾸밈없이 순진해 보이는 생김 그대로 물 흐르듯 흘러갔다.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 이렇게 음식을 실어 나르면 귀찮으실 텐데...”
“아니요. 저는 이런 게 좋아요. 모두 둘러앉아서 음식도 나누고 술도 돌려 마시고. 우리 아저씨가 금주령을 내렸지만...”
“술 잘 하세요?”
“조금이요. 원래는 한 잔도 못 마셨거든요. 그런데 지나온 세월만큼 술도 늘더라고요... 오늘은 반병까지만 허락받았어요...”
“아저씨는?”
“우리 아저씨는 술 못해요. 많이 마셔야 세 잔? 그러니까 때로는 눈치도 받아요. 저는 술 마시고 노래방 가고 하는 게 좋은데...”
말하는 내용이 어쩌면 철없이 들리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들어오다 교통사고를 당하기까지 했다한다. 추돌사고였는데 안전벨트를 하지 않고 차의 앞자리에 앉았던 까닭으로 유리에 얼굴을 부딪쳐 눈 부위를 다쳤고 이미 1차로 성형수술을 한 상태라고 했다. 한 달 후에는 다시 눈에 대한 수술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술을 드세요?”
“네. 좋은데 어떡해요... 그래도 지금은 자제하는 편이에요. 사고 후로는 우리 아저씨 단속이 더 심해졌기도 했지만요...”
듣기만으론 한편으로 어이없기까지 했다. 솔직한 성격 탓인지, 이것저것에 구애받고 싶지 않을 만큼 답답함이 마음 속에 쌓여 있기 때문인지 처음에는 쉽게 구분해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들이 복합되어 생겨난 그 여인만의 독특한 인생 스트레스 해소법임을 스스로 나 자신에게 납득시킬 수 있었다.
차야 가든 말든 포기상태로 신경 쓰지 않고 앞 차가 알아서 질질 끌고 가는 동안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며 동병상련의 마음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러다 그 부부에게서 생겨난 호기심을 해결해보기로 했다.
“아저씨하고는 몇 살 차이세요?”
“동갑이에요.”
“연애결혼 하셨어요?”
“그게 연애인지 중매인지, 아니면 겁탈인지, 아주 애매해요...”
“무슨 소리에요?”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생판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아주 작은 차였는데 납치됐었거든요...”
“납치요?”
“네. 제가 스무 살 때였는데... 그 때 저는 4공단에 있던 봉제공장에 다니고 있었어요. 한 날 퇴근하고 나오는데 느닷없이 세 남자가 달려들어서 무조건 차로 밀어 넣는 거예요...”
술도 마시지 않은 그 여인은 마치 술에 취해 횡설수설을 하는 듯 갑자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한 편의 드라마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요?”
“뭘 어떻게 해요? 그 상황에... 잔뜩 겁을 집어먹어서 몸과 입은 얼어붙고 정신은 멍해지고... 차에서 내릴 때까지 꼼짝도 못했어요.”
“정말이에요?”
“그럼요...”
“반항하지도 않았어요?”
“반항이요? 한 번 당해보세요. 그럴 겨를이 있나... 아무것도 모르던 그 어린 것이 혼자 밤길 걸어가다가 그런 일을 당했는데...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어디로 갔는데요?”
“포천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운전한 사람이 우리 아저씨였고 친구 둘을 데려왔던 거예요.”
“포천은 왜?”
“포천이 우리 아저씨 집이었던 거죠.”
“그럼 아저씨는 인천에 살던 사람이 아니었던 거예요?”
“네. 일주일 전에 인천 누나 집에 다니러왔다가 공장에서 나오는 저를 보고 한 눈에 ‘저 사람이다’ 했다는 거죠. 그래서 일주일 내내 생각하다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무작정 저를 납치했던 거예요...”
그런 일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황당한 일이기도 해서 심문하듯이 이것저것을 계속 물어갔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