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9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8일 중앙선관위의 선거법 위반 결정에 대해 하루 만에 반기를 들었다. 원광대에서 명예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는 자리에서였다. 선관위는 지난 7일 노 대통령이 ‘참여정부 평가포럼’ 특강에서 한나라당과 그 당 대선 예비후보들을 공격한 것이 ‘선거법상 선거 중립 의무 위반’이라고 결정했다. 이 결정에 국민 61.4%(글로벌리서치 7일 조사)가 동의했다. 반대 25.7%의 두 배가 훨씬 넘는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국민과 정반대로 갔다. 그는 “(선거법 9조는) 어디까지가 선거운동이고 정치중립인지 구성요건이 모호해 위헌이며 세계에 유례가 없는 위선적 제도”라고 했다. 중앙선관위는 헌법기관이다. 헌법 수호자가 헌법기관으로부터 범법 판정을 받은 것만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그 결정문을 찢어버렸다. 이것은 헌정 질서 파괴 행위다.

    대통령은 2004년 선관위로부터 똑같은 ‘선거 중립 의무 위반’ 결정을 받았다. 그때도 지금처럼 ‘정치활동을 할 수 있는 대통령에게 선거 중립을 요구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불복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당시 탄핵심판에서 “대통령은 선거에서 자신을 지지한 일부의 대통령이 아니다. 대통령은 국민 전체에 대해 봉사함으로써 사회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를 지고 있다. 대통령에게 정치활동이 허용돼 있다 해도 선거에서의 대통령의 중립 의무를 부인하는 논거가 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노 대통령은 2004년에도 “선거법은 관권시대의 유물”이라며 위헌 주장을 했었다. 이에 대해서도 헌재는 탄핵심판에서 “대통령이 현행 법의 위헌을 의심한다면 법개정안을 국회에 내야지 국민 앞에서 법률의 유효성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헌법을 수호해야 할 의무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헌재는 “대통령이 선거법을 위반해 중앙선관위로부터 경고를 받고 그에 대한 반응으로 현행 선거법을 폄하한다면, 다른 공직자나 국민 누구에게도 법의 준수를 요구할 수 없다”고 했다. 지금 노 대통령의 행동에 해당되는 말이다.

    노 대통령은 2004년 선거법 위반 지적을 받은 직후 다시 한 번 보란 듯이 그 법을 어겼다. 지금도 그대로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다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향해 “대운하를 민자로 한다는데 민자가 들어오겠느냐. 이명박씨가 감세를 주장하는데 도깨비 방망이로 돈(예산)을 만드느냐, 흥부의 박씨가 어디서 날아 온다더냐, 절대 속지 마라”고 했다. “한나라당 집권은 끔찍하다”고 했던 그는 이날은 “나에게는 다음 정부가 여전히 민주정부가 되도록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선거운동을 공언하다시피 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도 언론에 대한 막말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언론은 독재권력과 유착해 앞잡이 역할을 해왔고 지금은 시장지배권력과 결탁해 봉사하고 있으며 이제 그 자신이 지배권력이 되려 하고 있다”고 했다. 어디서나 언론을 끌고 가는 것은 대통령의 마음의 병이다. 여기에 길게 대꾸할 필요는 없다. 이달 초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한국 민주화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집단’으로 언론을 꼽은 사람(45.9%)이 가장 많았다.

    노 대통령은 이날 한나라당 후보들을 향해 “당신보다 내가 나으니, 나만큼만 하라”고 했다. 대통령 5년 단임제에 대해선 “쪽팔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신문에 ‘쪽팔린다’만 나올 것”이라고 예고도 했다. 사전을 찾아보면 ‘쪽팔린다’는 ‘부끄럽다’의 속되고 천한 말이라고 풀이돼 있다. 대통령이 이럴 수는 없다. 정말 국민은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