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 달빛이 말없이 내려앉는 이슬에 반사되고 있었다. 같이 초소를 지키던 옆 동기에게 총을 맡기고 무작정 철조망 담을 넘어섰다. 몸을 숙여 밭두렁 사이를 지나며 식별되지 않는 식물들의 잎을 관찰해갔다. 어디서 보았음직한 식물 줄기들이 땅을 기어가며 서로 엉겨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중 한 줄기를 왼손에 잡고 오른손을 삽 삼아 흙을 파헤쳤다. 둔탁한 덩이가 손끝에 걸려왔다. 땅속에 더욱 손을 깊이 넣어 그것을 움켜잡아 꺼냈다. 대강 짐작하고 담을 뛰어넘었던 것이 헛수고는 아니었던 것이다. 주변 땅속을 더 뒤져 고구마를 한 아름 캐냈다. 군복 상의를 벗어 보자기로 만들어 그것에 고구마를 담아 묶고서는 담 너머 동기에게 던졌다. 달빛에 비친 동기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가득 넘쳐나고 있었다.

    “야 임마! 껍질을 벗기기는... 이렇게 풀잎에 대강 문질러 흙을 닦아내고 그냥 씹어 먹는 거야, 알았어?”

    그날 밤 우리 둘은 경계 근무시간 내내 그렇게 고구마를 입속에 담아 오물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군 생활 경험은 하나의 소중한 추억이 되어 우리들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돌이켜보면 지루함과 고단함의 연속이었을 텐데도 그것들에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는 것처럼 간혹 그 시절을 회고하게 만든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랬던 시절이 자신을 위장하지도 않고 스스로 내면을 가식하여 꾸밀 수도 없었던, 오직 자기 자신에게 진실 된 마음으로 충실해야만했던 시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시절 동안에는 가능한 한 마음을 어지럽히고 현혹하는 현상과 대상을 멀리하려고 했었다. 그만큼 인간 본연의 솔직한 마음가짐에 그 어느 때보다 더욱 가까웠던 시기였던 것이다.

    제대를 눈앞에 두고 있던 해의 1월이었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자 그 날도 여지없이 방송을 통해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로 시작되는 ‘팔도사나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저녁밥을 먹을 때가 되었으니 알아서 하라는 신호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 군가에 발을 맞춰 삼삼오오 손엔 각자의 숟가락을 들고 식당으로 향했었다.

    군 생활에서 생겨진 마음을 하루하루 정리해가고 있던 때여서 그랬는지 그 날은 유난히 식욕이 동하질 않았다. 고추장에 비벼 먹을까, 깻잎으로 싸 먹을까 궁리하며 내무반에서 TV를 바라보고 있었다. 밥을 먹고 들어서며 관물대에 숟가락을 던져 넣는 후배들의 행동이 힘차보였다. 조금은 만족되게 포식했을 경우에 나타나는 행동들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조수가 손가락에 묻은 물을 퉁겨대며 말했다.

    “사수님, 식사 안 하십니까?”
    “응, 이따가 봐서...”
    “오늘은 죽여주데요. 퍼뜩 가서 드이소...”
    “뭐 나왔는데?”
    “소고기 국이요. 재고 처리했는지 오늘은 물 반 고기 반이에요. 배 터지게 먹었다니까요.”

    미역에 계란을 풀고 통조림에 든 소고기를 떨어뜨린 그 국은 그래도 먹을 만한 것이었다. 그 날은 유난히 소고기의 양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내무반으로 들어서는 다른 후배들의 표정도 다들 넉넉해 보였다. 그 순간만은 집 떠난 설움을 잠재울 수 있었을 것이다. 침상에 드러누워 배를 두드리는 병사, 아직도 포식의 여흥이 가시지 않은 듯 TV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숟가락으로 장단을 맞추는 용사들로 내무반은 여유가 불러내는 소란함이 술렁거리고 있었다.

    “퍼뜩 가이소...”
    “응, 잠깐만. 저것 좀 보고...”

    조수의 거듭되는 유혹과 재촉에도 왠지 엉덩이는 떨어지지 않았다. 경계근무를 교대한 후배들이 반가운 소식을 듣고 서둘러 숟가락을 챙겨 나서고 있었다. 시간상 그 병력들이 항상 식사의 마지막 순서였다. 그들의 꼬리를 물지 않으면 그날 식사는 포기해야 하는 경우였다. 어쩔 수 없이 엉덩이를 털고 일어서며 숟가락을 찾아 들었다. 바로 그 때, 급보를 알리는 전령이 내무반 문을 박차고 들어서며 숟가락을 내던지고는 침상에 그대로 엎어졌다.

    “욱... 욱...”
    “뭐야?”
    “가지마세요...”
    “왜?”
    “쥐, 쥐가...”
    “뭐?”
    “쥐가 나왔어요...”
    “어디서?”
    “국속에서...”
    “정말이야?”
    “네...”

    그 소리에 만찬의 여흥을 충분히 만끽하고 있던 내무반의 후배들은 순간 모두 혼비백산하며 그 전령을 붙잡고 자초지종을 다그쳐갔다. 어떻게 해서 쥐가 나왔으며, 어떤 형태의 것이었는가를 자세하게 보고받고 있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전령의 말을 듣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복에 겨웠던 행복의 상태에서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 들어가는 그 자체였다. 침상에 배를 움켜잡고 다시 쓰러지는 병사, 토하는 흉내를 내며 내무반 문을 박차고 나가는 병사들은 조금 전까지의 용사의 모습에서 비참한 패잔병의 신세로 전락해가는 것들이었다. 그러는 가운데 짐짓 여유를 부리며 침상에 그대로 앉아 먹은 것을 소화해내는 진정한 용사들도 더러 눈에 들어왔다.

    상황은 이러했다. 많은 병사들이 식사하는 취사장의 국통은 아주 큰 것이었다. 자율배식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은 순서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기도 했다. 반찬류는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했지만 소고기 통조림 국은 고기가 밑에 가라앉기 때문에 순서가 뒤일수록 퍼지는 국자의 무게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다 군 생활 기간이 얼마 되지 않는 후배들은 일과 후 내무반 정리를 위해 대부분 먼저 식사를 해야 했다. 그들이 선배가 뒤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한가하게 국 국자를 깊게 저어 퍼낼 수 있는 여유를 즐기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급보를 전한 전령이 그렇게 살짝 국물만을 퍼낸 식사를 끝내자 아쉬운 미련이 숟가락을 놓지 못하게 했다. 배식대를 바라보니 사람이 거의 없어 다시 2차의 식사를 하기위해 국통으로 다가가 국자를 잡고 원 없이 깊고도 크게 저어 한 국자를 퍼냈다. 예상을 초과하는 묵직한 무게에 내심 흥분하며 국자를 퍼 올렸는데 국물의 경계면을 빠져나온 국자의 끝에 무언가 가느다란 것이 길게 걸쳐있더라는 것이었다. 국자가 더 가까이 다가오면서 비로소 그 형체를 확인하게 되었고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취사장은 일대 아수라장으로 변한 것이다. 그곳에 앉아 만찬을 즐기던 고참들의 식판이 급히 이끌려나온 취사병들에게 날아간 것은 물론이었고...

    술에 취한 쥐가 국통에 빠져 익사했는지, 실연을 이기지 못한 상처받은 쥐가 자살했던 것인지, 아니면 취사장의 비밀을 알고 있는 쥐가 암살당했던 것이었는지, 아무튼 그 이후로 식사 시간 때마다 악몽을 떠올리는 행동을 하는 것은 철저한 금기사항이 되었다.

    지금도 이 일은 생각할 때마다 기억에 새롭게 미소를 이끌어내곤 한다. 쥐가 차려 놓은 만찬을 성대하게 즐겼던 사람들에게는 어떤 추억으로 남아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우리들의 인생사에도 이와 유사한 면이 반복해 생겨나고 있을 것이다.

    좋았던 관계가 하루아침에 악연으로 돌변하고 철천지원수가 되어 상대의 등을 향해 손가락을 똑바로 세우기도 한다. 그 때의 상황 중 지금도 더욱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극단적 반응을 보이던 사람들의 행동이 아니라 그 사실을 알고도 그대로 침상에 걸터앉아 말없는 미소를 흘리고 있던 몇 안 되던 후배들의 모습이었다. 그 미소는 타는 속과 다르게 스스로도 해결할 방법이 없어 자포자기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고, 악화된 상황이었지만 긍정적으로 소화해내는 마음의 표시였을지도 모른다.

    어느 것이든 각자의 선택에 따라 우리들 인생의 방향도 달라져가고 있을 것이다. 순간의 지혜가 참으로 소중하다는 것을 시간이 흐르며 더욱 느껴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