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Ⅰ.

    연일 뉴스를 통해 주가가 천정 높은 줄 모르고 계속 상종가를 경신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것을 전달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도 무엇이 그를 흥분하게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톤이 높아지며 마치 자랑스럽게 기쁜 소식을 전달하는 양 들떠 다니고 있다. 자신이 상종가를 두드리고 있는 종목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 소식에 덧붙여 현재 우리 경제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해괴망측한 소리도 덩달아 전달하길 빠뜨리지 않는다. 같은 나라에 살고 있으나 다른 보호막 속에 안전하게 있는 탓인지 전혀 딴 나라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지금이라도 당장 시장이나 서민들의 주 경제활동 장소에 가서 그런 말을 한다면 엄청난 소금 세례가 그 보답으로 주어질 것이 틀림없다.

    이 나라 산업 발전기 때에는 모두 다 못 먹고 못 살았어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한 푼 두 푼 저축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언감생심. 각 집안마다 저축통장 대신 대출통장이며 빚을 내지 않으면 하루의 생활을 온전하게 해나가기가 어려운 것이 일반 서민가계의 형편이다. 또 예전에는 자기 몸만 부지런히 움직이면 산 입에 풀칠하지 않는다는 말이 진실로 통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소도 비빌 언덕이 없어 그냥 자빠져 발버둥을 쳐야하는 세상이다. 부지런히 움직일 장소도 없거니와 그런 일거리도 마땅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하여튼 요지경세상인 것만은 틀림없을 것이다. 정부 따로 국민 따로 인 세상이니 정부의 존재필요성이 무엇인가 의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잠시 일탈해 방황하다 일상으로 돌아와 보니 모든 것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지금의 정치적 현실은 국민들의 혼돈을 더욱 부채질하고만 있다.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무엇을 떠드는지 자신들조차 알지 못하는 인사들의 무능력과 위선, 죄의식 없는 허위는 동시대의 국민들에게 고통만을 강요하고 있다.

    뜬금없이 소중한 시간을 정치 이야기로 소비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 정치의 ‘정’자만 들어도 골이 욱신거리는 형편인데 자진해서 오염당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회피하며 마음의 여유를 찾으려 해도 라디오, TV, 신문 등 언론매체를 통해 이들은 끈임 없이 우리들을 괴롭히고 있는 상황이다. 오늘은 무엇을 써볼까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그 때나 지금이나 부정부패, 무능력, 위선, 거짓 등이 우리의 생활을 파괴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비싼 밥 먹고 할 일 없이 해대는 푼수 짓은 정말로 역겹기만 하다. 그러니 아까운 시간 쓸데없이 더 이상 낭비하지 않고 우리들만의 삶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어가야겠다.

    Ⅱ.

    군에 있을 때의 일이다. 뙤약볕이 세상을 지배하던 8월, 훈련소에 입소해 군기를 다지는 4주간의 영내훈련을 마치고 처음으로 야외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누구나 다 느끼던 것이었겠지만, 사람들에게 있어 자유는 그만큼 소중한 것이었다. 같은 하늘 밑의 두 장소였음에도 불구하고 영내에서 마시던 공기와 바깥의 그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일렬로 줄을 지어 논두렁을 걸어가는데 저 멀리 앞에서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민간인이 눈에 들어왔다. 그 때 일행 중 한 명이 크게 소리쳤다.

    “야! 여자다!”
    “어디? 어디? ...”

    딴 데로 한눈을 팔고 있던 일행들이 오랜만의 눈요기를 기대하며 웅성거렸다.

    “이 자식이 장난하나? 할머니잖아...”
    “마, 할머니도 여자 맞잖아. 안 그래?”

    그 말이 맞았다. 할머니도 여자였다. 실망한 동기들도 있었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남자들만 북적거리던 단일함에서 우리와는 다른 대상을 본 것 자체가 신선하게도 느껴졌다. 더불어 가족이 연상되며 애써 잊고 있던 집 생각이 선뜻 머리를 스쳐갔다.

    이 주머니를 달고 떼로 달려드는 이를 몸속에 보관하며 그것과 동고동락하던 선배들의 어려움은 무척이나 컸을 것이다. 먹을 것도 없던 당시에는 하루 세 끼에 달린 고통이 참기 힘들었던 일이었다. 세월이 흘러 삽으로 휘저어 씻은 쌀을 대충 쪄낸 밥이나마 마음껏 퍼먹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래도 어려움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집 떠난 설움이 그것을 더욱 민감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미지근한 물에 된장을 넣고 쓱쓱 으깨 내놓은 듯한 밋밋한 된장국, 소나 돼지가 발을 씻고 간 듯 작은 형체의 기름기만 둥둥 떠다니던 일명 고깃국, 요리의 불편함 때문에 그러기도 했겠지만 언제나 두꺼운 튀김옷을 입혀서만 제공되던 꽁치...

    그런데 특히 이 꽁치에 대해서는 깊은 연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꽁치는 매번 튀겨서만 주는 거지? 인원이 많아서 그렇겠지만 왜 내장이나 꼬리 등의 지느러미가 그대로 있는 거야? 좀 대충이라도 손질해서 요리하면 안 되나? 이 꽁치 제대로 씻기나 한 거야?

    이 순서대로 생겼던 의문을 생각하다보면 결론은 하나였다. 꽁치를 튀기기만 한 것은 요리의 간편성 때문인 것이 확실했다. 냉동되어 있던 것을 물에 담아 해동하고 대강 땟물만 없앤 다음에 밀가루 옷을 입혀 뜨거운 기름 속에 던져버리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뭐 어때? 뜨거운 기름 속에서 다 소독되는데 말이야... 정신 차려 임마! 여기가 집이냐? 살기 위해선 먹어야 돼...

    Ⅲ.

    한창 훈련에 열중하던 어느 날, 일과를 마치자 상급부대에서 지휘관이 왔다 하며 연병장에 모두 집합하게 했다. 소원수리를 받겠다는 것이었다.

    장병들의 고충을 처리한다는 취지로 행해지던 이 소원수리가 오히려 화를 초래했던 경험들이 생각날 것이다. 그 지휘관은 사열대에 서서 훈련병들의 마음에 열심히 호소하며 훈련 중 불편함에 대해 서슴없이 적어내길 간곡하게 부탁하고 있었다. 조교들의 눈빛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지만, 지휘관의 호소에 이미 감동한 훈련병들은 그 눈빛에 관계없이 자신들의 사연을 구구절절 적어갔다. 그 결과야 모두 알듯이 혹독한 시련일 뿐이었는데... 그 날 이후 뙤약볕 밑의 훈련 강도는 더욱 심해지기만 했던 것이다. 조교들의 분노가 어느 정도 풀릴 즈음 한 조교가 이실직고해 줌으로써 그 사실을 파악하게 되었다.

    “깍두기 7개가 정량인가?”

    한 훈련병이 지휘관의 부탁대로 솔직하게 적어낸 것이 화근이었다.

    “야 이 자식들아! 너희들 깍두기 더 주기 위해 그럼 우리가 무밭을 가꿔야겠냐? 있는 게 그것밖엔 안 되는데 어떡하라는 거야, 응? 그냥 대충 먹어! 알았어?”

    땀을 잔뜩 흘리다 식당에 들어서면 기간병들이 배식을 담당했었다. 뜨거운 여름날에 찜통에서 금방 꺼낸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떡진 밥과 형식만 국인 것은 먹기가 이만저만 고통이 아니었다. 거기다 나머지 반찬은 뭔지 관심 둘 필요도 없는 것들이었고, 때론 오직 붉은빛을 띤 깍두기만이 유일한 반찬이기도 했다. 그것이 크기라도 컸으면 다행이었겠지만 딱 손톱만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던 것이다. 그 깍두기를 퍼내던 국자의 크기로는 운 좋으면 7~8개, 운이 나쁘면 5~6개 정도를 절대 초과하지 않았었다.

    배식을 받으면 국은 먼저 짬밥 통에 버리고 곧바로 수돗가로 달려갔었다. 수도를 틀어 콸콸 흐르는 차가운 물로 밥을 몇 번 씻어 낸 다음 물을 담아왔었다. 그렇게 물에 만 밥 한 숟가락과 깍두기 한 개를 입에 넣으면 씹히는 건 밥알뿐이었다. 그러니 깍두기 한 개를 더 넣다보면 나머지 밥은 맨밥으로 꾸역꾸역 배를 채워 가야했으니 그 고충은 모두에게 동일했던 것이다.

    “누구야? 누구야? 병신 같은 놈이...”

    비지땀을 흘리며 소원수리 효과를 톡톡히 볼 때에는 지휘관의 말을 믿은 깍두기 7개 장본인을 어리석은 놈이라 하며 색출해내려 했었다. 그러나 서서히 시간이 흐르자 그 어리석은 놈은 우리의 고충을 대변한 용기 있는 병사로 변해갔다. 하지만 훈련이 끝나고 자대로 배치되어 뿔뿔이 흩어질 때까지 아무리 분위기를 조성했어도 그 깍두기 7개 주인은 절대 찾아낼 수 없었다.


    - 밥만 먹고 살 수 없을 때, 그 밥이 다시 절실하게 그리워질 때까지 굶어보는 것도 인생 문제의 특효약일 수 있다. 잠시 방심되는 마음이 생길 때에는 그 마음을 계속 굶겨보는 것이다. 그러면 항상 먹던 밥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만사형통의 특효약이 아닌 것 또한 확실하다. 각자의 주식인 밥일 때에만 성립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서로가 좋아서, 진정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만난 두 사람이라 하더라도 인생의 고비는 시도 때도 없이 찾아들기 마련일 것이다.

    일탈에 대해 생각해 올 때, 어느 부분엔가는 꼭 끼워 넣으려 했었지만 내 정신까지 일탈했었는지 깜박 놓치고 말았다. 그래서 이곳에다 셋방을 빌리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