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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리처드 닉슨의 망령이 청와대와 정부청사 주변을 배회하는가. 닉슨의 망령이 대통령 집무실에 맑은 정신을 흐리게 하는 안개를 피우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닉슨의 언론 학대를 빼다 박은 노무현의 언론 죽이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1960년 대선과 62년 캘리포니아주 지사선거에서 잇따라 낙선의 쓴잔을 들었던 닉슨은 68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닉슨은 휘티어라는 캘리포니아의 작은 대학 출신이다. 그는 자신에 대한 비우호적인 기사를 쓴 명문대학 나온 '기자놈들'에 대한 적의(敵意) 를 갖고 백악관에 입성해 언론에 대한 복수에 착수했다. 해양수산부 장관 때 필요하다면 언론과의 전쟁도 불사한다고 말한 노 대통령도 주류 언론에 대한 적의를 갖고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았던가.
닉슨의 백악관은 대통령이 찍은 기자들의 리스트를 작성해 그들의 출신 학교와 사상과 보도 성향을 기록했다. 국세청을 동원해 그들이 소득세 신고를 제대로 했는가도 조사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사주 오티스 챈들러는 불법 이민자를 고용한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그때 워싱턴 포스트의 발행인과 편집 간부들은 정기적으로 정부 관리들을 점심에 초대해 간담회를 열었는데 닉슨은 정부 관리들의 그 간담회 참석을 금지했다. 닉슨은 워싱턴 포스트 '물 먹이기'로 워싱턴의 보수적인 석간신문 워싱턴 스타에 특별 인터뷰를 제공했다. 대통령 당선 뒤 한겨레신문을 방문한 노 대통령의 큰 선배다.
닉슨의 지시로 백악관 대변인 론 지글러는 워싱턴 포스트 기자와는 직접 대화도 못하고 전화도 받지 못했다. 닉슨의 언론 죽이기 공작의 백미는 백악관 서관에 있던 기자실을 서관과 본관을 잇는 통로로 몰아낸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기자실 정리의 선구(先驅)가 아닌가. 노 대통령은 청와대 기자실인 춘추관이 청와대 울타리 밖에 있어서 그걸 내쫓을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을 애석해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닉슨은 실체가 애매한 말없는 다수는 자기편이라고 믿고 기자회견 대신 국민을 직접 상대한 텔레비전 연설을 자주했다. 언론은 나를 비판하지만 국민은 내 편이라고 착각한 노 대통령이 즐기는 국민과의 대화가 닉슨의 길이 아닌가. 노 대통령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닉슨을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인가.
주류 언론의 신뢰를 떨어뜨려 자신에 대한 신뢰를 높인다는 닉슨의 난폭한 전략은 당연히 참패했다. 그가 믿은 말없는 다수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워싱턴 포스트는 72년 대선 때 재선에 나선 닉슨이 민주당 선거본부를 도청한 사실, 그리고 그것이 발각되자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해 사건을 은폐한 사실을 속속들이 파헤쳐 74년 닉슨에게 대통령직 사임이라는 굴욕을 안겼다.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노무현 정부가 들고 나온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은 속 들여다보이는 속임수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많은 선진국에는 별도의 송고실이 없다고 주장하고, 국정홍보처장이라는 사람은 미국의 프레스룸은 기자실이 아니라는 해괴한 논리를 들고 나온다. 대꾸할 가치도 없는 주장이다. 대통령이 언론에 대한 적의를 적나라하게 표출하면서 언론에 언어폭력을 잇따라 행사하니까 충성의 기회를 놓칠세라 남북 장관급회담 취재하는 현장에서 중앙일보 기자를 추방하는 순발력 있는 장관도 등장했다.
기자실 몇 개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다. 언론의 존재가치,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노 대통령의 왜곡된 인식이 문제다. 언론의 취재를 도우려면 최소한 앞선 정권 때까지 하던 대로나 하라. 대통령 기자회견 때 코드가 다른 신문의 기자들에게도 질문할 기회를 주라.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강행하면 노무현 정부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광범위한 국민적 저항에 부닥칠 것이다. 그리고 정부의 많은 내부 고발자들이 실정(失政)에 관한 정보를 흘릴 것이다. 그런 정보는 새어 나오게 마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