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9일자 오피니언면에 실린 이 신문 신효섭 논설위원이 쓴 <‘평양 냉면’ 하나만 파는 여권의 ‘대선 식당’>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해찬씨가 요즘 “8월까지 한반도 안팎의 정세가 급변할테니 잘 대응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정동영씨는 얼마전 ‘개성역에서 파리행 기차표를’이란 책을 냈다. 김근태씨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남북정상회담을 빨리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명숙씨의 가장 큰 관심사는 남북 종단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연결 문제이다. 김혁규씨는 얼마 전 북한에 갔다와 “서울·개성 남북평화대수로 개통, 신황해권 경제특구 추진 등을 논의했다”고 했다.

    여권 대선 주자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든 ‘북한 장사’의 실태다. 대북 이슈로 한 건 해서 대선 국면에서 득을 보겠다는 계산이다. 하기야 이들의 눈에도 여권의 창고에서 ‘대선 시장’에 내다팔 수 있는 상품을 찾기란 힘들 것이다. 경제가 좋은가, 외교가 훌륭한가, 교육이 정상인가.

    그렇다고 해도 ‘북한 장사’가 과연 이문을 남길 수 있을까. 코리아리서치가 지난달 말 국민들에게 ‘대선 전 남북정상회담이 범여권 후보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물었다.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는 36.9%뿐이었다. ‘별 영향 없을 것이다’가 47.3%, 아예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답이 9%였다.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대북 지원을 해서는 안 된다’는 답도 61.1%였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여권의 ‘북한 상품’을 살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지금 여권이 선거를 노리고 벌인 ‘북한 깜짝쇼’의 대표작은 2000년 총선 직전의 남북정상회담 개최 발표이다. 그러나 당시 여당은 과반 의석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야당 지지자들이 ‘이러다 지겠다’며 결속해 일부 박빙 승부 지역에서 여당이 역효과를 봤다”고 했다.

    사실 골수 친여 표들은 ‘북한 쇼’가 없어도 여권 후보를 밀게 돼 있다. 반대로 골수 야당 지지자들이 북한 변수 때문에 마음을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결국 20% 안팎 부동층이 문제인데 이들에게 ‘북한 노래’는 한참 전에 흘러간 유행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여권 주자들은 어려울수록 정도로 가야 한다. 괜히 장사도 되지 않는 북한에 눈 돌리지 말고 정권의 실정과, 그것을 막지 못한 자신들의 잘못을 참회하고 정권의 실책에 대한 대안을 내놓는 것이다.

    국민들이 낸 첫번째 시험문제는 역시 경제다. 2003~2006년 사이 국제통화기금이 분석한 181개국 중 106번째에 그친 경제성장률(평균 4.2%)을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가. 지난해에만 60조원이 늘어나 582조원에 이르는 가계빚 문제의 해결책은 뭔가. 이 정부가 4년 동안 만들어놓은 국가 채무가 137조원으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54년 동안 쌓인 134조원보다도 많은데 대책은 무엇인가. 20대 취업자수가 지난 2월 1986년 2월 이후 처음으로 400만명 밑으로 내려앉았을 정도로 심각한 일자리 문제의 해법은 있는가.

    이뿐만이 아니다. “1950년대 이래 최악”(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이라는 한미동맹은 어떻게 복구할 것인가. 지금도 세계각지를 떠돌고 있는 한국인 ‘교육 난민’ 수만명을 돌아오게 만들 방안은 무엇인가.

    대선 주자들은 자신과 자신의 정책을 상품으로 팔기 위해 ‘대선 시장’에 가게를 연 사람들이다. 메뉴를 소비자 입맛에 맞춰 짜는 건 장사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미 시장에서 한물간 ‘북한 메뉴’ 하나로 손님을 끌어보겠다는 여권 주자들은 이런 기본조차 깨치지 못한 얼치기 장사치들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