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촉박한 일상을 살아가다보면 누구나 편안하게 한숨 돌릴 순간을 갈망하게 된다. 온 몸의 긴장을 털어내고 마음을 고요한 큰 바다처럼 만들어 그 위를 흘러가는 하얀 깃털과 같이, 외로운 고독 속에 몰입하며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있는 자신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세상을 어둠에 파묻은 밤의 정적은 수시로 그렇게 나를 유혹해대기도 한다. 쫓기듯 급히 달아나야하는 일상들은 우리들 마음에 한 치의 여유가 생겨나는 것도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인생의 끈을 조금이나마 느슨하게 풀어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순박하게 끌려가봐야 계속 무작정 끌고 가려고만 한다. 그러니 어쩔 도리가 없다. 어느 순간에는 나를 묶어두고 있는 그 끈을 잘라내는 수밖에...
휴식이 필요했다. 번화가 삼거리 한가한 공터의 가로등 밑에 차를 세웠다. 차문을 열어 시원하게 새벽공기를 받아들였다. 가슴이 팽창하며 저절로 숨이 터져 나오고 마음과 몸을 빳빳하게 세우게 했던 긴장이 공중 속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문턱에 왼쪽 발을 걸쳐 세우고 둥글게 말아진 손가락 크기의 흰 뭉치를 꺼내 물었다. 우리들 인생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 반드시 끊어 내야할 고질들이 어디 이것뿐이랴. 그 고질들에 때로는 의존하는 우리들은 그 자체가 모순덩어리일 것이다.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몇 일째 차속에 방치해놨던 신문뭉치를 꺼내들었다. 바로 앞쪽에 있는 신호등 불빛이 바뀌면서 녹색과 붉은색이 교대로 반사되고 있었다.
신문에 늘어져있는 기사 속에 빨려 들어가고 있던 때였다. 신호등은 직진과 좌회전의 동시 신호로 바뀌어 차안으로 녹색 빛이 반사되고 있었다. 깨진 유리조각처럼 깊숙이 파고드는 금속의 날카로운 마찰음이 정적을 깨뜨리면서 곧이어 물체가 충돌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눈을 돌려보니 좌회전하던 택시의 측면을 십대 둘이 탄 오토바이가 들이받은 것이다. 정면충돌은 아니었지만 택시 측면의 훼손정도로 보아 얼마간의 충격이 있었을 법했다.
오토바이를 운전한 아이가 충격으로 넘어져있다 정신을 차리면서 바닥에 나뒹굴어 꿈쩍도 하지 않고 있는 뒤에 탔던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었다. 모든 것이 순식간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둘은 마음대로 한가한 도로를 질주하면서 현실을 일탈해 밤이 주는 자유를 최대한 만끽하고 있었을 것이다. 바닥에 누워있는 아이는 아무리 흔들고 불러보아도 반응을 하지 않았다. 겉으로 심각하게 드러난 외상은 없었어도 안으로 받은 충격이 무척 컸었던 것 같았다. 구급차가 도착하기 전 얼마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 아이는 여전히 아무런 움직임 없이 누워있기만 했다. 어쩌다 두세 번 발끝이 가볍게 떨리기만 했을 뿐...
많은 끔찍한 교통사고를 목격했지만 그 사고에 대한 여운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Ⅱ.
프란체스카와 로버트는 그날 밤 둘만의 뜨거운 첫 밤을 보내게 된다. 그 순간 그들에게는 어떤 것도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오직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적이고 육체적인 본능만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둘의 사랑행위는 시간과 장소에 구속받지 않고 거듭해 되풀이되어갔다. 마치 영원히 다시 경험하지 못할 현실에서의 짧은 인연이라는 것을 예감하기라도 한 듯이, 그들에게서 생겨나는 모든 것을 불살라갔다.
박람회에 간 남편과 아이들이 돌아오기 전 로버트는 프란체스카에게 함께 가기를 애타게 소망했다. 그러나 이미 로버트에게 자신의 마음을 송두리째 넘겨준 그녀는 아이들과 남편에 대한 책임감을 이야기하며 육체는 같이 갈 수 없음을 말한다. 며칠을 더 마을에 머무를 것이라고 말한 로버트는 그녀의 손을 잡고 눈물을 머금은 채 영원히 간직할 그녀의 모습을 눈에 담아내고 있었다. 떠나는 그를 바라보며 강렬한 폭풍이 휘몰아치고 간 것 같은 공허함에 저항하며 프란체스카 역시 눈물을 흘렸다. 차마 떠나지 못하는 로버트가 차에서 내려 그녀를 꼭 안았다. 그러면서 둘은 죽어서도 안고 갈 마음을 서로의 체온을 통해 확인해갔다.
차를 타고 떠나가는 로버트의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프란체스카는 사라지는 차의 흔적을 쫓아갔다. 길 끝에 다다르자 로버트의 차가 다시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로버트와 프란체스카는 그렇게 멀리서 말없이 한참동안 바라보기만 했다. 시간이 흐르며 둘 사이의 이별이 살아서 마지막이라는 것을 더욱 느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운명을 끌고 가는 것처럼 앞으로 가기만 하는 차속에서 숲을 돌아서기 전 로버트는 다시 뒤를 돌아봤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양손에 머리를 파묻고 울고 있는 프란체스카의 모습이 화살이 되어 그의 눈과 마음에 꽂혀 왔다.
리처드와 아이들이 돌아오자 프란체스카는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 그들 삶의 한 부분으로 돌아간다. 그 후 며칠 동안 의식적으로 마을에 접근하지 않고 피하고 있었다. 만약 로버트를 만났을 때, 그녀 안에서 소용돌이 칠 태풍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비가 계속해 뿌리는 날에 식료품과 농기계 부품을 구입하기 위해 그녀는 리처드와 같이 마을로 가게 된다. 그녀가 탄 차 앞에 로버트의 픽업트럭이 서서히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로버트는 자신의 옆에 그녀를 위한 자리를 비워놓고 프란체스카가 차문을 열기만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프란체스카는 또다시 심하게 갈등하며 운전석에 앉아있는 그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떨어져있는 그 시간 동안 프란체스카는 로버트를 향한 자신의 마음이 그토록 강렬한 것이었는지를 새삼 깨달아오고 있었다. 차문을 열고 내려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로버트에게 가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럴 수 없었다. 영혼을 울리며 갈등하면서도 그녀는 남편의 옆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그런 확실한 감정은 인생을 몇 번이나 다시 살더라도 단 한 번밖에 오지 않는다는 로버트의 말이 그녀의 등을 세차게 밀어내고 있었지만, 그녀는 로버트가 탄 차의 후미등이 깜박이는 것만을 응시한 채 꼼짝 못하고 있었다.
방황하듯 망설이며 앞을 막고 있던 로버트의 차가 마침내 방향을 바꿔 프란체스카의 시야를 벗어나고 있었다. 그녀의 눈이 로버트의 차를 급하게 따라갔다. 갈기갈기 찢어지는 마음으로 로버트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던 프란체스카는 억제할 수 없는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갑작스런 아내의 행동에 리처드가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았다.
로버트와 프란체스카가 처음 만났던 것이 1965년, 22년의 세월이 지난 1987년 자신의 예순 일곱 번째 생일날에 프란체스카는 로버트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을 들고 그와 저녁식사를 같이 했던 식탁에 혼자 앉았다. 남편 리처드는 1979년에 사망했고 두 남매인 아이들은 그들의 사정으로 집에 오지 못했다. 새 식탁을 사자 리처드는 그것을 없애려 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헛간에 잘 보관했다가 리처드가 세상을 떠나자 다시 집으로 옮겼던 것이다.
로버트와 함께 있을 때 그랬던 것처럼 프란체스카는 촛불에 불을 붙였다. 식탁에, 이곳저곳에 로버트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녀는 로버트와 헤어진 후 리처드가 죽고 난 다음 단 한차례를 제외하곤 그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다시 불어 닥칠 폭풍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때 이미 자신의 세계를 외롭게 고수하던 로버트는 현직에서 은퇴한 다음이었다. 그녀는 그의 자취를 알아낼 수 없었다. 아마 그때 서로 연락이 닿았더라면 둘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나마 함께 못다 한 사랑을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둘의 운명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로버트도 마찬가지였다. 마을을 떠난 후 그 세월 동안 사진이 든 소포를 한 번 보냈을 뿐 전화를 하지도 편지를 보내지도 않았다. 그렇게 했을 때, 그녀가 혼란해지는 것을 그는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프란체스카 또한 그의 그런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로버트와 헤어진 다음 프란체스카는 그 해부터 그가 찍은 사진이 실리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정기구독 신청했다. 그것을 통해 그녀는 로버트가 늙어가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와 헤어진 2년 후인 1967년, 프란체스카의 눈이 한 사진에 머물렀다. 그것은 로버트가 무언가를 촬영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녀는 아들 마이클의 확대경을 가지고 와 로버트의 목걸이에 매달려 있는 메달에 갖다 댔다. 그 메달에는 그녀의 이름인 프란체스카가 새겨져 있었다. 로버트도 그녀가 잡지를 통해 자신을 보고 있을 것을 알고 변함없는 그녀에 대한 마음을 그런 식으로 전달하려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랬던 그의 모습들도 1975년 이후로는 볼 수 없었다.
그 후 1982년, 프란체스카는 하나의 소포를 전달받는다. 이미 1967년에 작성된 로버트의 유서에 따라 그가 남긴 카메라, 은 목걸이와 프란체스카가 새겨진 그 메달, 은팔찌, 그녀가 그를 만난 처음에 예이츠 시를 인용해 그를 저녁식사에 초대하는 내용을 적어 다리에 붙여놓았던 메모, 그리고 1978년에 작성한 그의 편지 등을 그가 사망하자 변호사가 보낸 것이었다. 로버트는 그녀가 써 붙였던 메모를 마치 그녀의 분신인 양 계속 몸에 지니고 다녔던 것이다.
편지에는 그녀를 찾아가고 싶어지는 충동을 잊기 위해 방황해야했던 고통들, 그녀와 헤어지던 것이 일생 중 가장 힘들었던 일이었으며, 자신이 어디에 있던지 그녀와 함께 머무르던 그 공간에서 그녀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를 생각하며 지내고 있고, 세월이 아무리 흐른들 그녀를 향한 자신의 마음은 변함없으리라는 애절함이 길게 나열되어 있었다. 변호사가 동봉한 편지에서 만일 그녀를 찾을 수 없을 때에는 모든 것을 소각할 것을 로버트가 부탁했다는 것, 또 그의 유언에 따라 로버트의 뼈를 둘의 추억이 간직된 로즈먼 다리에 뿌렸음을 프란체스카는 알게 되었다.
1989년 프란체스카는 그 식탁에 엎드린 채로 사망했다. 그녀 역시 1982년 변호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몸을 화장해 로즈먼 다리에 뿌려주길 부탁했다. 그렇게 둘은 죽어서야 가루가 되어 영원히 하나가 될 수 있었다.
Ⅲ.
예전에 영화를 볼 때에도, 소설을 읽을 때에도 느꼈던 혼란이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나를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 내가 너무 감상적이어서 그런 것도 아닐 것이다. 짧은 인생 동안에 우리가 겪어가는 것들에는 그것을 열기 전 도저히 앞날을 점쳐낼 수 없는 미지의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그것을 열었을 때는 이미 우리들의 운명은 돌이킬 수 없는 길에 들어서고, 그것과 더불어 우리들 삶도 그 끝을 향해 나아가기만 한다.
이 소설, 이 영화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영화에서 구체적으로 묘사된 하나하나의 장면, 소설에서 작가가 이끌어간 주인공들의 행동과 자세한 심리묘사 등에 현혹당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것들을 떠나 프란체스카와 로버트라는 두 사람의 본연의 모습이 무엇이었으며 어떤 것을 진실로 추구하려 했던가를 골똘히 생각해 본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정돈되지 않고 뭐라 하지 못할 답답함만이 가슴 속을 꽉 채워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것이 실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고 그냥 소설, 그것을 영상화한 한 영화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해도 좋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 빠져들어 심각하게 갈등해볼만한 이유를 충분하게 제공하고 있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전체가 가상의 현실이었다 하더라도 영화는 영화로써 훌륭했고 그것을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에 사로잡히게도 했을 것이다. 그것을 완성한 작가의 상상력도 그 자체로써 충분히 존중되어져야 한다.
결혼에는 그것을 합의한 남녀 두 사람이 반드시 지켜야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누군가를 사랑함에 있어 의무를 나열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은 자연스러움 그 자체일 것이다. 내면에서 샘솟는 숨길 수 없는 감정의 분출, 그렇기 때문에 무엇으로도 억제할 수 없는 그것이 곧 사랑일 것이다.
일탈에 대해 글을 쓰며 이 영화를 언급한 것은 누구를 심판하여 옳고 그름을 따지기 위함이 아니었다. 이 이야기를 통해 갖는 느낌은 각자가 자유롭게 다를 것이다. 그 누구도 어떤 사람의 솔직한 감정에서 우러나는 행동을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은 없다. 누구라도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경험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 속칭 어린 폭주족들과 가출청소년들을 대하게 된다.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천진난만함마저 느낄 때가 있다. 대부분 늦은 시간에 대하게 되는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주로 찜질방을 향해 간다. 아마도 그날의 잠을 자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데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그들의 대화를 통해서도 알게 되는 것이지만, 그들 중 상당수가 결손가정의 고민들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 중 어느 한쪽 또는 양쪽 모두에서 나타나는 도박, 주벽, 부정 등으로 결과 된 가정파탄으로 인해 어린 시절 감정에 심각한 상처를 받고 공격적 성향을 발산하며 방황하게 되는 것이 매우 심각한 양상이다. 경제적 곤란은 부부가 화합하는 한 큰 문제가 되지 못한다.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부부가 마음을 변하지 않고 화합하며 노력해간다면, 오히려 아이들은 그런 부모에게서 삶의 긍정적 희망을 발견하고 사랑의 참 의미를 깨달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부부 모두 또는 어느 한쪽의 부정된 행동으로 인해 가정이 파국을 맞게 되는 경우였다. 그로 인해 아이들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부모의 철저한 이기심으로 공격 받고 마음에 심각한 상처를 받아 무작정 사회에 대한 복수심을 키워가기도 한다. 자신들의 정상을 벗어난 일탈 된 행동으로 인해 맑고 순수하게 자라갈 수 있었던 아이들이 무참하게 그 꿈을 꺾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죄악 중 이보다 더한 죄악은 없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것에서 생겨나는 배신감은 자신을 낭떠러지에서 던져버리게 유혹하기도 한다.
길 가에 피어 있는 꽃들을 보노라면 그 모습들이 각기 제각각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것은 똑바로 제 방향을 잡아 예쁘게 자라고, 또 어떤 것들은 제멋대로 삐틀어져 모양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들도 많이 있다. 인간이 태어나 자라가는 것도 이와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아무리 바람이 불어와도 제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비바람을 막아주려 해도 제 고집대로만 삐틀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슬퍼 보이는 것은 예쁘게 자라가고 있는 꽃 중에 무분별한 사람의 발길에 짓밟혀 꺾어져 있는 꽃을 바라보는 경우일 것이다.
택시와 충돌해 쓰러져 꿈쩍도 하지 않고 있던 아이를 생각하며 불현듯 그런 생각이 솟아났었다. 만약에 저 아이가 그렇게까지 된 과정 속에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가 작은 한 원인으로 작용하기라도 했다면, 그것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행위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인간들의 이기적 욕망을 바탕으로 한 바람에는 ‘끈적끈적한 바람’만 있을 뿐, 절대 ‘산뜻한 바람’이 생겨날 리 없다. 누구의 마음에나 순간을 불어 스치는 바람이 언제든지 불어왔다 사라지곤 할 것이다. 아무리 ‘산뜻한 바람’이라하더라도 그것을 의도하는 당사자 본인에게 불어오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마음에서 솟아오르며 거센 태풍으로 변화하고자 욕망하는 감정을 스스로 인내하며 억제할 때, 특히 그 사람을 신뢰하던 주변의 가족들에게는 정말로 시원한 ‘산뜻한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보잘 것 없는 넋두리를 늘어놓느라 하루를 자판 앞에서 서성거렸다. 로버트와 프란체스카의 마음에 다가설 때에는 출렁이는 감정을 억누르느라 자리를 몇 번씩 벗어나기도 했다. 힘든 마음이었지만 다시 그들에게 다가설 수 있었던 좋은 날이었을 것이다.
나? 나에겐 그런 재주가 없다. 또 그런 재주가 있다 해도 현재의 내 콩깍지에 만족하며 살아가련다. 만약에 지금의 콩깍지를 벗겨내려는 새롭고 강력한 콩깍지가 눈앞에 나타난다면 그대로 줄행랑을 놓을 생각이다. 나에게는 프란체스카와 로버트 같이 죽음에 이를 때까지 고통을 인내할 줄 아는 능력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