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Ⅰ.

    얼마나 기다려온 순간이었던가. 정말로 오랜만의 호흡이었다. 죽어가던 몸의 세포들이 하나 둘 팔딱거리며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두 남녀의 숨소리는 더욱 깊게 더욱 길게 더욱 거칠게 변해가며 영혼을 파고들었다. 서로의 숨을 받아 마시려는 듯 그들의 입과 코는 서서히 하나가 되어 갔다.

    여자의 목덜미를 감싸 쥔 남자의 손가락이 흘러내리는 비단처럼 여체의 솜털을 건드린다. 그 자극에 여자의 두 눈은 힘없이 사르르 감겨갔다. 자신의 숨을 이미 남자에게 모두 쏟아 넣은 듯 여자는 호흡을 정지하고 있었다. 두 남녀의 입술과 코끝이 가볍게 맞닿았다. 그것을 통해 남자의 체온이 전달되자 여자는 가쁜 숨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입술을 작게 벌리며 가슴속의 열정을 토해 내갔다.

    방황하던 남자의 손이 정지하며 여자의 상체를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살짝 벌려진 여자의 입술을 자신의 것으로 완전히 덮어 강하게 흡착해갔다. 남자의 뜨거워진 숨을 몸속으로 받아들인 여자는 두 손을 움직여 남자의 허리를 힘 있게 감싸 안고 격렬하게 자신을 내던지고 있었다. ..........

    “켁... 켁...”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남자가 발버둥 치며 눈을 떴다.

    “어? ....... 뭐야? 뭐하는 거야! 지금 뭐한 거냐고~?”
    “뭐긴 뭐야! 꼭 삶아놓은 새우처럼 몸을 구부리고 젖 달라는 듯이 주둥이를 오므리며 빨아대잖아. 그래서 내가 손가락 좀 넣어줬어. 왜? 뭐가 잘못됐어?”
    “뭐야~? 잠자는 사람한테...”
    “잠잤어? 으응... 잠잤었구나... 그럼 꿈꿨나보네? 무슨 꿈이었어? 아주 신나게 발버둥 치던데...”
    “꿈은 무슨 꿈... 피곤해서 그랬나보지...”
    “아잉~, 그러지 말고. 꿈꿨지? 말해봐. 내 꿈꿨어? 나하고 뽀뽀하는 꿈이었어?”
    “귀찮게 왜 그래? 꿈 안 꿨다니까...”
    “으응, 그럼 배고파서 그랬나보네. 자기야, 밥 줄까?”
    “아, 왜 그래? 자다 말고 무슨 밥이야! 저리가! 잠자게...”
    “왜~? 내 손가락 맛있게 잘 빨 던데... 그럼 다시 손가락 넣어줄까? ...”

    ‘아이고! 이 둔순이. 내 인생을 이렇게 쪽박 내놓고 꿈까지 못 꾸게 해? 나 이제는 정말로 감 잡았으니까 더 이상 건들지 마, 알았어?’

    인간이 가진 욕구가 때로는 꿈이 되어 잠자리에 나타난다. 또 그런 구체적 욕구를 갖고 있지 않았는데도 간혹 잠의 악마가 꿈으로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를 충동질하기도 한다. 하여튼 본능에 충실했던 꿈을 꾸고 난 다음의 허탈함은 환상의 꼭대기에서 현실의 바닥으로 떨어진 충격 자체이리라. 그래서 꿈은 일찍 깰수록 좋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이때의 꿈은 현실에선 도저히 구체화할 수 없는 것, 또 구체화하는 순간 벼랑 끝을 향해 스스로 걸어가는 것과 같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들임은 물론이다.

    꿈에서 자신 미래에 대한 예시를 보기도 하고, 그것을 통해 현재를 되돌아볼 수도 있다. 동물적 본능, 동물적 쾌락에만 충실한 꿈은 당연히 그것을 꾸는 인생에 대한 심각한 경고일 수 있다. 잠에서의 꿈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어떤 꿈을 꾸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져가게 된다. 아예 꿈도 꾸지 않을 것인가, 적당하게 즐길 것인가, 그것을 탐닉해 갈 것인가의 선택은 각자의 자유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러나 꿈을 꾸더라도 인생의 저울대는 항상 아주 민감한, 절대로 복원되지 않는 평형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한 쪽을 살짝만 건드려도 인생의 저울대는 냉정하게 그 평형을 깨뜨려버리고 만다.

    아마도 이 남자는 지금도 계속해서 밤마다 꿈길을 방황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꾸었던 그 꿈을 찾아 꿈속에서 또 꿈을 그리워하고,.. 아쉽게 잃어버린 달콤하고 짜릿했던 그 여인을 찾아 현실로 데려오기 위해 힘들게 헤매고 있지는 않을는지 그 결과가 궁금해진다.

    Ⅱ.

    “아저씨, 죄송해요. 저한테 술 냄새 많이 나죠...”
    “아니요. 전혀 못 느꼈는데요. 술 드셨나요?”
    “네. 3병이나 마셨는걸요.”

    어느 날 늦은 밤이었다. 뒷자리를 차지하고 조용히 앉아 있던 한 여인이 자백을 시작해갔다. 술을 마신 어떤 사람은 여러 가지 것이 혼합된 조금은 역겨운 냄새를 거부감 생기는 행동과 함께 강하게 풍겨온다. 이런 사람들과는 길게 대화해선 안 된다는 것을 그간의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술 냄새 대신 내면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전달해온다. 이런 경우에는 나 또한 같은 마음이 되어 다시는 나누지 못할 대화의 상대가 되어간다.

    우선 체구도 자그마한 여인이 3병의 소주를 마시고도 조금도 언행이 어긋나지 않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게 생겨났다. 주량으로만 봐서도 인생의 대선배를 만난 것이다. 깍듯이 예의를 갖추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3병 드셨어요?”
    “네...”
    “그런데도 취하지 않으세요?”
    “아직은 괜찮아요.”
    “주량이 얼마나 되시는데요?”
    “예전엔 5병까지는 마셨는데 지금은 조금 줄이는 편이에요...”

    주태백의 핏줄을 타고난 남자들이야 그렇다하더라도 탄복하는 수밖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말의 내용으로 보아 혼자되어 있는 사람인 듯 했다. 이혼했는지는 묻지 않았다. 어쨌든 그런 시간이 오래되었던 것 같았다. 그 시간들과 함께 주량도 차츰차츰 증가되어 왔을 것이다. 그나마 친구들이 잊지 않고 자주 불러낸다 하니 그것이 다행일는지도 몰랐다. 한 곳에서 1차 행사를 마치고 친구가 사는 아파트로 다시 이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동갑내기임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그랬는지 소꿉친구를 만난 듯 서로 예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어갔다.

    아무런 격식 없이 하루에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 중의 대부분과는 별다른 대화 없이, 이렇다 할 느낌을 가질 필요도 없이 헤어져간다. 때로는 강한 스트레스를 받아 인간관계에 대한 깊은 회의를 느껴보게도 된다. 그러다 아주 드물게 쌓인 피로가 말끔히 가시기도 한다. 어떤 이와는 한 마디 대화가 없는 가운데서도 편안함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나누었던 대화라고는 내릴 때 주고받은 일상적인 인사뿐이었음에도 인간관계에 대한 신뢰를 다시 복원해내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경우일 것이다.

    그만큼 인간사 인연이라는 것이 우리들을 많이 고민하게도 하고 있다. 그 인연들에는 생겨나서는 안 되었을 것들, 소중하니 조심스럽게 지켜가야 할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 우리를 시험하고 있을 것이다. 그 인연에 따라 우리는 울고 웃으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렸던 시절로 돌아가 대화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인연의 종착지에 가까워갔다. 같이 술자리에 있었더라면 소주 한 병 한 병이 쌓여가고 있을지도 몰랐다. 무언가의 아쉬움을 마감해야만 했다. 이 아쉬움은 이성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그것이 그것 아니냐는 항변을 한다면 할 말 없다. 생각은 각자가 자유니까 말이다.

    “다음에 만나면 꼭 술 한 잔 같이 합시다. ...” 서로 허공에 뜬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다음에 만난다고? 왜 만나는 건데?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보고 싶어졌니? 웃기는 놈이네...
    아니야. 그냥 술친구로 만나자는 건데 뭘...
    아서라! 평생토록 쌓아 가야할 만리장성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올 테니...

    Ⅲ.

    한 남자가 차에 올라 이 소리 저 소리로 책을 읽어가고 있었다. 공부는 혼자 하라는 마음으로 형식적으로 고개만 끄덕이고 있을 뿐이었다. 이미 술 한 잔을 걸친 듯한 그 사람은 집이 가까워오자 방향을 바꿔주길 부탁했다. 한 잔을 더해야겠다는 것이 그 이유였는데...

    자신이 자주 가던 업소였던 것 같았다. 그러나 앞에 다다르니 그 업소의 문은 이미 굳게 닫혀 있었다. 남자는 또 다른 곳으로 방향을 수정하길 부탁했다. 몇 번이나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술에 의해 이성이 완전히 마비된 것은 아닌 듯했다.

    그 곳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너무 늦어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후로도 남자는 몇 군데 전화하며 영업하는지를 확인했다. 그러나 한 군데도 그를 기다리는 곳은 없었다. 그 사이 사이 남자는 자신의 얘기를 마음속에서 꺼내고 있었다.

    그들 부부가 이혼한 것은 맞바람이 원인이었다. 먼저의 원인제공은 남자였고, 그것을 근거로 한 여자의 더욱 거센 바람은 결국 그들의 결혼생활을 파국으로 이끈 것이다. 남자는 거쳐 가는 바람이었는데, 여자는 태풍에 실려 아예 먼 곳으로 날아가 버린 경우였다.

    여자는 새로 생긴 남자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고, 결국에 지친 그 남자는 살던 집과 재산의 일부를 떼 주고 이혼도장을 찍고 만 것이다. 그 후 아이와 함께 부모님의 집으로 들어가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한 사람이 기억난다. 이 사람도 남자다. 여자는 속성상 자신을 쉽게 노출하지 않는다. 그저 느낌으로 알아내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등장인물이 주로 남자인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요새는 여자가 더욱 공격적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처음에는 내가 당황했다. 싸움을 하다 도망쳐온 사람인 줄 알았던 것이다. 한 남자가 급히 차문을 열고 앞좌석에 올라탔다. 곧이어 세 명의 남자가 뒤를 따라와 그 남자를 끌어내리려 했다. 차에 탄 남자는 한사코 거부하며 출발하길 요구했다. 세 명의 남자 중 한 명이 차 앞에 서있었기 때문에 차를 출발시킬 수 없었다. 그들의 대화를 듣다보니 친구사이라는 것을 파악하게 되었다. 결국 그 남자의 고집에 세 명의 친구가 뒤로 물러섰다. 차가 움직이자 남자는 먼저 미안함을 표현해 왔다. 그러면서 대화는 시작되었다.

    남자는 그 날이 자신의 생일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친구들이 모여 자신을 불러냈다는 것이었다. 이혼해 처음으로 혼자 생일을 맞는 친구를 위로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친구 중 한 명이 자신의 아내를 데리고 나왔던 것이 문제였던 것 같았다. 그 부부의 다정한 행동이 이혼한 남자를 은근히 자극했던 것이다. 남자의 말을 빌자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뻔히 자신의 마음을 알 텐데 친구 부부가 앞에 앉아 너무나 다정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시간이 흐를수록 참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리를 박차고 나왔고, 놀란 친구들이 그 뒤를 따라 나왔다는 것이었다.

    그걸 좀 이해하면 되었을 텐데.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반사적으로 행동했던 이면에는 자신의 이혼에 대한 깊은 후회와 아쉬움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느끼고 남자의 행동을 이해하기로 했다. 그 또한 맞바람이 이혼의 원인이었다.

    남자에게는 두 살과 네 살 된 아이가 있었다. 깊은 내용이야 잘 알 수 없었지만 아이들은 아빠와 떨어져 유아원에서 생활하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온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그 날이 아이들이 집에 온 날이었다고 했다. 자신의 부모님들이 집에 와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사이 잠깐 나왔다는 이야기였다. 어차피 아이들을 보기 위해서라도 빨리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전자의 경우와는 달리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아서인지 몰라도 그 남자는 자신의 이혼과 현실에 대해 깊이 갈등하고 있는 듯 했다.

    “아이들이 아직 어린데 서로 마음을 누르고 재결합을 생각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안 돼요. 이미 늦었어요. 딴 살림 차렸거든요...”
    “벌써요?”

    전 아내는 이미 다른 남자와 동거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남녀가 결혼생활의 의무를 지켜야하는 것에는 하등의 차이가 있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옛날과 같이 여자들이 목매달며 울고불고 하지 않는 추세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오히려 ‘잘 됐으니 돈 내놔라.’하며 곧바로 새로운 남자를 구해내는 능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더군다나 그들의 행동에는 아이들이 전혀 걸림돌이 되지도 못하고 있다.

    모든 이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인연, 절대 회복 불가능한 인연들도 많이 있다. 그들의 상황에 처해보지 않고 그 사람들의 불행을 가타부타 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가 어떤 고통을 주고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허황된 욕망에 사로잡혀 소중한 인연을 파괴하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는 바람을 말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허황된 욕망은 또 다른 욕망을 부채질 한다는 것을 모두 다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누구나 예외 없이 언제나 혹독한 시험에 빠져들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스스로를 경계하는 마음이 아쉬워지는 시간이다.

    이혼한 후 재산을 정리하지 않고 있는 사이에 다른 남자와 살림을 꾸민 전 아내가 전 남편 몰래 모든 재산을 빼돌린 경우 등 이혼을 둘러싼 비일비재한 사례들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아 있는 두 가지 것들이었다. 택시를 몰다보니 폭주족에서부터 가출청소년 등 우리사회 어린세대들의 일탈 또한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그것들의 심각성을 더욱 깊게 인식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위 두 사례에 있어서도 부모의 양쪽으로부터 이유 없이 공격당하고 있는 어린아이들이 있었음을 쉽게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갈등하고 있는 그들과의 대화를 마무리할 때, 이 말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어서 좋은 사람 만나셔야겠네요...”

    이 말에 그들의 대답은 대부분 이런 것이었다. “어디 그런 여자가 쉽게 있나요?”

    또 허탈해지는 마음에 서당 선생 풍월 읊는 생각을 혼자 하게 된다. ‘그런 여자 찾기 전에 먼저 그런 남자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그런 남잔가? 아니다. 이미 퇴출을 당했어도 몇 번이나 당했어야할 놈이었다. 단지 악녀 아닌 아내 만나 근근이 목숨을 연명해가고 있을 뿐...

    오늘도 ‘산뜻한 바람’은 불어오지 않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