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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7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대중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야당 지지나 비(非)좌파 성향의 국민들은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씨와 박근혜씨가 건전한 정책대결과 철저한 검증을 거쳐 경선을 치르고 경선 결과에 따라 후보를 단일화하는 페어플레이를 해줄 것을 고대해왔다. 그래서 두 사람이 도(度)를 넘어 인신공격을 하고 감정적으로 대결하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이러다가는 또 선거에서 지는 것 아니냐며 두 진영의 이성(理性) 회복을 촉구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동안 두 사람의 너절한 인신공격과 엊그제의 만남까지를 지켜보면서 어쩌면 이들이 경선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서로 갈라서서 독자의 길을 모색, 결국 야권의 패배로 귀결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그간의 우려가 결코 우려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좌파세력의 재집권을 봉쇄할 우파의 정치적 역량은 결국 일장춘몽으로 끝나고 말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두 대권 주자가 여기서 싸움을 멈출 수 없다면 더 싸우도록 시간을 연장시켜줄 수밖에 없다. 대립과 대결의 시한을 8월의 경선으로 정해놓고 그나마도 서로가 동의할 수 없는 조건과 방법을 승복하라는 것은 집권과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무게에 비해 너무 가벼워 보인다.
그래서 경선 시기를 대선에 임박해 늦추거나 아예 경선을 없애 두 사람이 원 없이 지지도를 올릴 만큼 올려보고 자신의 역량을 시험해볼 만큼 해보도록 하자는 것이다. 불가피하다면 서로 갈라서서 독자적 세력을 끌고 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한가지 대전제가 있다. 두 사람은 끝까지 경쟁하되 선거 막판에 가서 자신의 지지도에 대한 객관적 자료와 냉엄한 평가를 토대로 한 사람이 용기 있게 사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막판 후보단일화를 도모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단일화의 시너지 효과를 최대화하자는 것이다. 5년 전 노무현과 민주당 그리고 정몽준 후보가 했듯이 말이다. 범(汎)여권 또는 좌파세력은 이번에도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가 막판에 단일화하는 것으로 ‘재미 좀 보려고’ 하는 모양인데 야권이라고 그런 게임을 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5년 전 이회창씨가 일찌감치 후보로 정해져 뭇매를 맞고 낙마한 것도 좋은 교훈이다.
사실 미국식 경선(프라이머리) 제도는 우리에게는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게다가 미국처럼 여야가 같은 시기에 각 주(州)의 예비선거로 후보를 결정하는 것과 달리 어느 당은 8월에 하고 어느 당은 더 늦은 시기에 결정하는 식이라면 경선의 의미가 없다. 지금의 한나라당 방식대로 가서 두 사람 중 어느 한 사람이 당의 후보로 결정됐다고 하자, 그러면 아무리 승복이라는 절차가 있다지만 일반 여론조사에서 40% 또는 20% 이상의 지지도가 빛을 보지 못하고 묻혀 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40~20% 이상의 국민적 지지도를 가진 야당 대권주자들이 상대당 후보는 아직 모습도 보이지 않는 데다 투표는 4개월이나 남은 시점에서 대통령에의 꿈을 일찌감치 접으라는 것은 어떤 논리로도 합리화되기 어렵다. 한나라당으로서도 스스로의 표를 깎아먹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두 사람이 경선 없이 막판 대통합으로 가기 위해서는 여러 위험한 다리들을 건너야 할 것이다. 당으로서 경선 과정을 아예 없애거나 경쟁 시한을 늘려 주는 과정에서 드러날 추태들로 인해 국민의 환멸을 살 가능성도 있으며 극단적으로는 두 진영이 분당이라는 파국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경선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이벤트성(性) 흥행효과가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이 흥행이 경우에 따라서는 표를 깎아먹는 악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막판 후보단일화 또는 드라마틱한 통합의 정치로 이어질 수 있다면 그 시너지 효과는 그것들을 덮어버릴 수 있다.
만일 그 어느 누구도 사퇴하지 않고 투표까지 간다면 결과는 자명하다. 이번 대선에서 좌파가 단결하고 또 한번 단일화에 성공한다면 현 상태로라도 야권을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하는 마당에 이·박 두 사람이 양립하면 어떤 결과가 올지는 불 보듯 뻔하다. 그렇게 겨뤄볼 여유를 주고 유권자들이 판단을 내릴 충분한 시간을 줬는데도 두 사람이 끝까지 오만과 편견을 버리지 않고 투표까지 간다면 그것은 두 사람의 정치적 사망이고 야당지지세력의 좌절이며 우파의 한계이자 대한민국의 숙명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