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일보 10일자 오피니언면 '세상만사'에 이 신문 문일 논설위원이 쓴 '이-박, 제대로 싸워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일이 1년 앞당겨진 올해 11월이라고 가정해보자. 공화 민주 양당의 대통령 후보는 이미 한 달 전에 결정돼 있을 것이다. 2월부터 대의원을 뽑는 프라이머리와 코커스가 열리지만 뉴욕 캘리포니아 등 10여개 주의 판세가 3월 첫째주 슈퍼 화요일에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대선이 치러지는 우리나라는 어떤가.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에 걸맞게 길을 걷는 이는 보이지 않는다. 열린우리당을 비롯한 범여권은 이렇다 할 예비후보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다. 국민에 대한 직무태만이다. 두 사람으로 좁혀진 한나라당 경선 주자들은 대의원 줄세우기에 바쁘다. 국민 눈에는 서로 곁눈질하느라 속도를 내지 못하는 마라톤 선수들처럼 보인다. 뜨겁기로 이름난 한국 대통령 선거 열기가 이번에는 왜 이렇게 미지근할까.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검증에 물릴까봐 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지난 2월 정인봉 변호사가 제기한 1996년 국회의원 선거 관련 의혹이 해프닝이 되고 말았지만 불씨가 아주 꺼진 것은 아니다. 병역문제 재산형성 사상검증 등 다른 덫들도 기다리고 있다. 이 전 시장의 절반밖에 안되는 지지율 때문에 고민하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열세를 뒤집을 만한 콘텐츠가 없다. 회심의 검증 카드가 정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있다 하더라도 여론을 살피는 것 같다.

    두 사람에게 적전분열을 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한나라당 지지층이 있다. 당의 승리가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한나라당의 내부 사정에 불과하다. 국민은 각 당이 정체성을 대표하는 데 합당한 후보를 내놓기를 바란다. 국민들은 느긋하지 않다. 다음 대통령감을 빨리 보고 싶어한다. 국민들도 충분한 숙려(熟慮) 기간이 필요하다.

    한나라당은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의 지지율을 합쳐서 70%라는 달콤한 꿈에 젖어 다음 정권을 떼놓은 당상(堂上)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여권 주자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금의 지지율은 모래성과 같다. 검증의 터널을 얼렁뚱땅 통과하고서 본선에 올랐다가 네거티브 한 방에 나가떨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소리도 크다.

    8월 경선을 앞에 두고 두 사람은 정면승부를 피할 수 없다. 경선일에 가까워질수록 과열될 것은 뻔하다. 공회전이 너무 길어져 단시간에 급속 가열되는 것도 문제다. 후유증이 심각할 것이다. 승자는 한 사람일텐데 지금대로라면 두 사람 중 한 명은 헛심을 너무 오랫동안 써야 한다.

    시대정신은 정면 승부를 바라는데 두 사람은 시시콜콜 싸운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싸움이 시시콜콜해진 것은 정작 해야 할 싸움을 피하고 변죽만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필요한가. 제대로 된 검증이다. 두 사람이 건설회사 사장과 국민누나 이미지로 끝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국민은 그들의 능력, 품성, 살아온 이력을 자세히 알고 싶어한다.

    한나라당 당내 검증이 미뤄지기만 한다면 결국은 당 바깥에서 검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언론이 정파성을 띠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지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예비후보들의 감춰진 진실을 제대로 들고 나온다면 좀더 좋은 대통령을 뽑는 데 도움되는 일이다.

    언론마저도 검증을 외면한다면 최후에는 정보를 쥐고 있는 쪽에서 네거티브 한 방이 나오게 마련이다. 한 방 맞은 뒤 억울하다고 아무리 주장한들 소용없다. 승부는 크게 흔들린 뒤다. 그게 네거티브의 위력이다. 네거티브를 당하더라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검증은 빠를수록 좋다. 한나라당은 스스로 검증할 것인가, 적에게 검증받을 것인가를 놓고 숙고해야 한다. 두 사람은 링 위에 올라 제대로 싸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