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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5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한석동 논설실장이 쓴 '김홍업씨의 경우'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김홍업씨는 오는 25일 치러질 전남 무안·신안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 선언을 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이 아니라 국민께 봉사하는 심부름꾼으로 거듭 태어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번 선거가 민주평화세력 통합의 출발점이 되기 바란다고 했다.
그의 출마 선언 강행 이후 시민사회단체들을 중심으로 표출된 광주·전남지역 민심은 싸늘하다. 호남인을 무시하고 자존심을 짓밟는 처사로, 김 전 대통령이 출마를 단념시켜야 한다는 견해가 주류다. 민주당을 향해서는 명분 없는 전략공천으로 공당이기를 포기하고 개인의 사리사욕과 김 전 대통령의 노욕에 무너졌다는 성토가 이어졌다.
민주당 내부 기류도 간단치 않다. 해당 선거구의 당원 수십명은 한동안 중앙당사를 점거해 '김대중 사당화'를 맹비판하고 공천 철회를 요구했다. 당 소속 일부 전·현직 의원도 김 전 대통령의 '정치 불개입 약속' 이행 등을 주장하며 김홍업씨 공천 재검토와 자퇴를 촉구하고 있다. 김씨가 당선까지 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비슷한 분위기는 최근의 몇몇 여론조사에서도 감지된다.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김씨의 출마에 대해 '해서 안 된다' '할 수 있다'는 응답이 전국적으로 각각 59.8%, 28.7%였다. 호남 전체의 그 비율도 55.4%, 33.1%로 비슷했고, 특히 무안·신안이 속한 전남의 경우 60.8%, 26.8%로 반대여론이 가장 높았다. 비토의 핵심은 권력형 비리 연루자가 자숙은 못할 망정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더군다나 아버지의 고향에 공당의 낙하산공천 후보로 출마하는 게 후안무치하다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아들의 출마에 대해 이렇게 입장을 밝혔었다. "이번에 기회를 얻어 명예회복하겠다는 것을 꼭 막을 수만은 없었다. 선거구민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이해해주기 바란다." 출마를 만류했다기보다 변칙적인 'DJ식 정치재개' 시나리오를 치밀하게 준비했고, 넌지시 지지를 호소한 인상이 짙다. 이는 범여권 통합 문제와 관련해 그가 최근 "단일 정당으로 하기 어려우면 연합해 단일 후보를 내 정권교체를 한 다음 그를 중심으로 단일 정당을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던 훈수와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 말 앞에 김 전 대통령은 "내가 이야기할 자격은 없다"는 전제를 달았다. 이는 지난해 10월 그가 정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며 '8년 만의 귀향'에 나섰던 것과 맥이 닿아 있는 느낌이다. 목포역 앞에서의 도민 환영식, '목포의 눈물' 합창, '선생님 만세' 함성, '호남 없이 한국 없다' 방명록 등으로 연결되는 당시 행보에서 일찍이 현재의 상황이 잉태됐다고 봐도 크게 틀릴 것 같지 않다.
불협화음 속에서도 정작 김홍업씨 당선을 의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보인다. 오랫동안 많은 호남인에게 김 전 대통령은 이름 석자만으로도 우상이자 신화였다. 원칙적으로 김씨의 출마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선거 때마다 김 전 대통령을 경이적 지지율로 성원했던 전례에 비춰 정치대리인 아들을 낙선시킬 정도로야 민심이 야박하겠느냐고 보는 것이다.
김홍업씨가 당선될 경우 불공정거래는 불가피하게 용인한다고 해도 더 비극적인 불행이 도래하는 것은 큰 문제다. 타지역의 냉소를 자초해 지역간 정서의 괴리가 더 커지고, 지역주의가 심화될 것은 필연이다. 아찔하지 않은가. 시대에 역행하는 '상왕(上王)정치'는 특정 개인·집단에 잠시 영광과 유익을 안겨주겠지만 모두의 불행으로 귀결되게 마련이다.
구악정치 타파는 궁극적으로 유권자의 몫이기는 하다. 퇴행의 단초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내일과 모레로 예정된 김 전 대통령의 퇴임 후 첫 전북 방문에서 새로운 희망을 볼 수 있기를 고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