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2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종호 논설위원이 쓴 '서열화는 순리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어느 서울대 교수는 최근 사석에서 이런 요지로 말했다. “한국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아직도 고교 평준화 제도가 이어지며 대학 평준화 주장까지 공공연히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평등주의 교육 제도나 정책이 국력을 저하시킨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지 오래다. 교육 정책 당국을 비롯해 교육계 안팎의 상당수 인사들이 그 명약관화한 폐해를 애써 외면한 채 실패한 사회주의 이념에 따른 빗나간 교육관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국가의 미래 운운하고 있다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다.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평준화 교육 정책의 폐기를 분명하게 공약하는 후보가 있다면 나는 그 사실만으로도 그를 지지할 것이다.”

    물론 그 교수만 그러는 게 아니다. 최근 서울대 장기발전계획위원회,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회장단,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등이 3불(不)정책 폐지 또는 재검토를 잇달아 촉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등을 금지하는 3불정책 역시 기본적으로 고교 평준화의 틀을 유지하기 위한 대학입시 규제다. 고등교육기관에 대해서도 우수한 학생 선발의 길을 막다시피 하는 식의 평등주의 교육 정책에 대한 비판이 이렇듯 거센데도 정책 당국은 왜 고집을 꺾지 않고 있는가.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편협하고 폐쇄적인 사고, 인식의 오류 등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무한 경쟁의 세계화 시대에 요구되는 정책적 덕목은 규제 아닌 자율이라는 사실, 개인의 노력도 기업의 투자도 정부의 정책도 ‘선택과 집중’을 통해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 평범한 다수보다 뛰어난 소수의 경쟁력이 사회나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더 크게 좌우한다는 사실 등을 외면하는 것은 세계와 미래를 등지는 셈이기 때문이다. 인식에 근본적 착오가 없다면, 엄연한 사실까지 왜곡하거나 부인하며 세계의 변화와 흐름에 눈감다시피 하고도 합리적이라고 우기기 어려울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서열화에 대한 빗나간 인식이다. 평등화 아닌 서열화는 타파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특히 학교 서열화는 죄악시하기까지 한다. 그런 현상은 오랜 기간에 걸친 교육 평준화 정책으로 부지불식 간에 세뇌된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을 비롯해 서열화를 벗어날 수 있는 사회 단위는 있을 수 없다. 근본적으로 어떤 분야, 어떤 사회 단위에서도 1등부터 꼴찌까지 서열화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서열은 억지로 부정하거나 거부한다고 해서 없어지지도 않고 없어질 수도 없다. 성취의 정도나 경쟁력 등에 따라 순위가 매겨지는 것은 순리다.

    학교도 예외가 아니다. 고교든 대학이든 마찬가지다. 교사·교수진의 수준, 학습 환경, 학생들의 학력, 졸업생들의 취업률과 사회 진출 후의 성취도 등에 우열이 있게 마련이고, 그 우열에 따라 학교의 서열화가 이루어진다. 서열화는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노력하는 데에 동기를 부여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모든 학생이 서열이 앞서는 학교로 진학하고 싶어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밤잠 안 자고 공부해 남보다 더 우수한 실력을 갖춰야 한다. 특수목적고인 외국어고와 과학고, 자립형 사립고 등에 우수한 학생이 몰리는 것도 서열이 앞서는 학교이기 때문이다. 외국어고 중에서도 서열이 있고, 과학고와 자사고도 그렇다. 평준화 고교라고 해서 서열이 없는 것도 아니다. 진학률 등에 따라 학생과 학부모들의 선호도 순위가 있다.

    이공계 대학으로는 서울대 공대, 포항공대(POSTECH),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이 각각 1등을 자처하고, 의과대학으로는 서울대 의대, 연세대 의대, 울산대 의대, 성균관대 의대 등이 1순위 그룹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전국 모든 대학, 모든 학과에 사실상 순위가 있다. 학생은 서열이 앞선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학교는 서열이 앞선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각각 경쟁해야 하고, 그 경쟁이 치열할수록 학생도 학교도 전체적으로 더 발전한다. 교육 정책 당국부터 그 순리마저 부정하는 식의 인식 오류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