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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6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호남인에게 요구되는 결단'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얼굴이 확 달아 올랐다. 호남 사람이 아닌데도. 전라도 광주에 그 엄청난 돈을 들여 세운 ‘김대중(DJ) 컨벤션센터’가 회의장으로 쓰이는 것은 1년에 몇 차례일 뿐, 물건 파는 세일 리어카들이 몰려드는 장터로 쓰이고 있다는 보도를 호남인들은 접해 보았는가. 지독한 반(反) DJ 기자의 완전한 날조는 아닐 것이다. 살아 있는 전직 대통령이 기념관을 갖고 있는 유일한 인물. 이 땅의 척박한 정치 풍토는 고인이 된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과 산업화의 아버지 박정희에게도 기념관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동교동을 가 보았는가. DJ는 대통령 재임중 자신의 손으로 ‘김대중도서관’을 세웠다. 그러나 이승만과 박정희는 앞으로도 도서관조차 갖지 못할 것이다. 이들에 비하면 DJ는 ‘살아있는 신(神)’이다. 정치적으로는 지금도 노무현 위에 있는 상왕이다. 이 모든 것은 호남인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DJ의 아들 셋 중 큰아들이 세 번이나 국회의원을 한 것도 DJ에 대한 호남인의 배려 때문에 가능했다. 대통령, 노벨 평화상 수상, 아들들의 막강한 권력 행사, 퇴임 후에도 변함없는 호남에서의 영향력, 참으로 호남인들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 보기 어려울 만큼 지역의 맹주에게 많은 보상을 해 주었다. 징하리만큼. 그런데 신과 가까운 영광을 누려 왔고, 지금도 누리고 있는 그가 또 둘째아들을 자신의 고향인 무안·신안 보궐선거에 내보내 금배지를 달아 달라는 것 아닌가.
호남인들에게 묻고 싶다. 또 DJ인가? 호남인들은 지역적으로 이미 정치적 승자의 위치에 있음을 자각해야한다. 찍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고? 두번이나 정권을 세웠는데도 계속 DJ를 ‘불멸의 지도자’로 바라보는 시각을 교정하지 않고 피해자 입장에서만 한국 정치를 바라본다면 호남은 우스개거리의 정치적 고도(孤島)가 될 수밖에 없다. DJ에 대한 호남인들의 끝없는 과잉 배려와 신격화에 대해 호남인 스스로 따져 물어야 한다. DJ에 대한 말못할 부채감 때문에 97%의 몰표를 주어 대통령을 만들어 주고, 노무현에게 95%를 찍어 정권을 만들어주고, 아들이 국회의원을 세번이나 하게 했는데도 또 둘째아들까지 국회의원을 만들어 달라고 한다면 더 이상 당신을 인내할 수 없다고 격렬히 저항해야 한다. 호남인들부터 DJ에 대한 인내의 한계를 깨야 한다. 호남인들이 먼저 들불처럼 일어나 DJ를 향해 대결단을 내려야 한다. 당신은 둘째아들까지 국회의원을 시키려는 것 자체만으로도 더 이상 ‘불멸의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지난번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찍은 호남인들은 DJ 아들을 전략공천한 민주당을 탓할 자격이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민주당이 측은하지 않은가. DJ가 신으로 받들어지는 땅에서 누굴 공천하겠는가. 지난번 총선 때 왜 열린우리당에 몰표를 던졌는가. 대통령을 만들었던 민주당을 깨는 열린우리당의 정치 패륜을 뻔히 알면서도 DJ가 만든 정권이고 DJ가 열린우리당을 지지한다고 해석해 따라갔던 것 아닌가. 한화갑과 조순형, 그리고 사수파들이 열린우리당의 세기말적 정치 패륜에 저항하며 민주당 족보를 유지하느라 고군분투해 온 것은 한국 60년 정치사의 기념비적 사건 중 하나로 기록돼야 한다. 그래도 대한민국 건국 이후 가장 난폭한 정권의 정치 패륜에 맞섰던 일단의 세력이 존재했다고. 하지만 이들이 호남인들 사이에서 어떤 대접과 평가를 받고 있는가. 그저 ‘선생님’으로부터 단 한 발짝만 벗어나도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고.
호남인들이 또 DJ를 따라가면 결국 민주당은 대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과 야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사실상 민주당이 나라를 결딴낸 열린우리당에 흡수통합되는 것이다. 왜? DJ가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통합을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면 호남인들은 나라를 부도내 온 노 정권을 징벌하지 않고 용서할 것인가. 호남이 권력만 유지하면 된다고? 호남인들은 선택해야 한다. DJ냐 탈(脫)DJ냐, DJ냐 나라냐, 노무현이냐 반 노무현이냐, 대한민국의 후퇴냐 전진이냐. 이젠 ‘무(無)DJ 유(有)호남’임을 DJ와 국민 앞에 보여줘야 한다. 호남인이여! 또 DJ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