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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8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한석동 논설실장이 쓴 <'그들만의 잔치' 김홍업 출마>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둘째아들 김홍업씨가 세상에 얼굴을 내민 시기는 199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친이 이사장이었던 아태평화재단 부이사장을 맡으면서였다. 그는 2002년 김대중 정권 막바지에 비리 혐의로 구속 수감되면서 널리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증여세 포탈과 이권청탁 명목 등으로 수십억원을 받은 죄로 2003년 5월 김씨는 징역 2년에 추징금 2억6000만원, 벌금 4억원 확정 판결을 받았다. 1년 6개월 가량 복역한 뒤 출감했으며, 2005년 8월 사면·복권됐다.
4월에 치러지는 전남 신안·무안지역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김홍업씨가 무소속 후보로 나설 결심을 거의 굳혔다고 한다. 불법 경선자금이 문제돼 얼마 전 의원직을 잃은 ‘동교동계’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의 지역구이자 부친 고향(신안)을 택했다는 것 외에 동기나 배경은 구체적으로 밝혀진 게 아직 없다.
역시 동교동계의 설훈 전 의원은 “김홍업씨가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범여권 통합에 긍정적인 작용을 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통합에 도움이 되는 상황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설씨는 2002년 대선 직전 이회창씨가 ‘검은돈’ 20만달러를 받았다고 폭로했다가 허위사실 유포죄로 징역 1년6개월,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던 인물이다)
김씨의 당선은 땅 짚고 헤엄치기일 것이다. 부친의 후광, 즉 김 전 대통령에 대한 호남의 변함 없는 폭발적 지지에다 부친 고향에 출사표를 던질 채비이니 말해 뭐하랴. 한화갑씨는 최근 방송 인터뷰에서 김씨가 출마하면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뜻을 밝혀 더 힘을 보탰다. “민주당을 키워오면서 김 전 대통령을 팔았는데, 김홍업씨를 거부하면 유권자들이 뭐라고 하겠느냐. 동교동에 누(累)가 안되고 정치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민주당이 현명한 판단을….”
일각에서는 김홍업씨가 이번에 당선될 경우 김 전 대통령의 ‘정치 밑그림’ 시발이 될 것이라고 관측한다. 어쨌거나 김씨의 출마는 분명 예삿일이 아니다. 당선은 더 큰 문제를 불러들일 공산이 크다. 궁극적으로, 대부분의 신안·무안지역 주민은 물론이고 대다수 호남인, 나아가 절대다수 국민의 자존심을 심대하게 훼손할 것이다. 김씨가 당선되면 가문의 또 한 가지 자랑거리로 기록되겠지만 많은 경우 조소(嘲笑) 대상으로 전락한 우리 정치에 대해 허무개그 수준의 냉소와 절망이 심화되고 국격(國格)까지 퇴보할 것이다.
많지 않을 뿐이지 대(代)를 잇는 정치는 어느 곳에나 있다. 김홍업씨의 경우 망국적 지역주의가 모태라는 현실이 비극적이다. 그의 형 김홍일씨는 부친의 ‘가신’ 출신 권노갑 전 의원으로부터 전남 목포 지역구를 물려받아 국회에 진출하는 등 3선 의원을 지냈다. 금융기관 비리와 관련해 거액을 수수한 죄로 그는 최근 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직을 잃었다. 김 전 대통령의 막내아들 김홍걸씨는 다른 비리 게이트에 연루돼 수십억원을 받았다가 알선수재 등 죄목으로 수감생활을 했다.
다음번 대통령이 되겠다고들 나선 사람 모두가 김홍업씨의 출마를 환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 역시 하나같이 지역주의에 함께 함몰돼 누구도 김씨의 출마를 자제시킬 시늉조차 보일 기미가 없다. 새 정치와 정치 개혁을 줄기차게 부르짖어온 이른바 그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또 어디 가버렸는가.
김 전 대통령은 아들의 출마에 부정적이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반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돈다. 후자 쪽이면 염치없는 욕심이라고 손가락질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 나라 정치와 국민이 욕되지 않도록 김홍업씨에게 불출마를 권면한다. 구태정치 청산에 행동으로 본을 보이고 호남 민심을 자유케 해주는 것이 ‘시대정신’에도 부합하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