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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를 외치며 호화롭게 사는 그들

입력 2007-03-03 11:22 수정 2009-05-18 14:16

문화일보 3일자 오피니언면 '포럼'란에 동서문화 발행인인 소설가 고정일씨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은 “지금은 민주주의보다 경제발전에 매진할 때”라 하고, 노무현 대통령은 “경제보다 과거사 청산부터”라 하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선군정치 강성대국으로”라고 했다. 후 주석의 말은 이해가 가는데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말은 답답하고 슬프다. 그렇다면 누가 보수적이고 누가 진보적인가. 이들의 정치역정을 보면 헷갈려 쉽게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사실 폴 케네디 예일대 교수의 말대로 차베스의 베네수엘라 등 정치경제 후진국 말고는 지금 어느 나라가 좌파 포퓰리즘 선동정치로 진보·보수 논쟁을 벌이고 있는가. 좌파는 인간은 본디 자유롭고 평등하며 인권이 있다는, 이성과 지성으로 생각해낸 이념을 계몽하고 그를 실현하려 한다. 이런 이념은 국제적이고 보편적이며 그 실현이 인류의 진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우파는 전통과 인간의 감정, 정서를 중시한다. 자유·평등·인권만으로는 합리성이 부족하더라도 오랫동안 정착해 온 최선의 세상 구조인 이상 다소의 폐해가 있더라도 혁명적으로 바꿔야 할 것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에드먼드 버크는 억압된 편에 서서 투쟁하던 좌파적 진보 개혁주의자였다. 그러나 프랑스혁명의 급진 파괴적 혁명 양상에 크게 실망한 그는 ‘프랑스혁명의 성찰’을 쓰고 보수주의 이론의 선구가 된다. 좌우파의 탄생은 1792년 프랑스혁명 국민의회에서 온건 지롱드당이 의장 오른쪽 의석을, 급진 자코뱅당이 의장 왼쪽 의석을 차지한 데서 비롯된다.

1950년대 프랑스 지식사회의 장 폴 사르트르, 모리스 메를로퐁티, 레몽 아롱, 알베르 카뮈를 중심으로 한 이들은 6·25를 지켜보면서 ‘공산주의 핵무기는 인도적 핵무기’ ‘자본주의 핵무기는 압살무기’ ‘집단수용소는 없다’ ‘자본주의는 날조다’ ‘사회주의 국가가 남침을 할 리 없다’ 등 치열한 좌우 이념대립으로 격렬한 논쟁을 이끈 주역들이다. 공산주의 편에 선 좌파 사르트르, 자본주의 편에 선 우파 아롱의 ‘어떻게 살 것인가’ ‘지식인의 아편’ 두 논저와 한국전쟁 북침·남침에 관한 이념논쟁에서 당시 아롱은 사르트르에게 완패했다.

그러나 30년 뒤 공산주의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아롱의 논지가 옳았음이 밝혀져 그의 승리로 결론지어졌다. 이 영향으로 선진국 지식인들의 좌파 이념이 수그러지고 거기에다 냉전종식 뒤, 종교 원리주의와 민족주의가 정체성 충족이라는 매력을 발산, 대두하는 가운데 좌우라는 도식이 어느새 구별할 수 없게 됐다. 러시아·중국·베트남까지 이념을 초월, 국경 없는 시장경제 전쟁에 뛰어들어 성장 잠재력을 무섭게 폭발시키고 있다. 프린스턴 고등학술원의 마이클 왈처 교수는 그의 저서 ‘정의와 다원적 평등’에서 정의를 실현함에 있어 획일성 아닌 다원성을, 보편성 아닌 특수성을 우선시함을 역설한다. 결국, 보다 좋은 삶의 질과 그 증진을 진보라 한다면 그것을 달성하는 정파가 진보 아닌가.

무한경쟁 세계화(globalization) 시대의 오늘, 우리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진보니 보수니 하는 현란스러운 수사는 시저(케사르)의 죽음을 앞에 놓고 로마 시민을 선동한 안토니우스와 브루투스의 변설을 듣는 것만 같다. 앨런 더쇼비츠 하버드대 교수는 노엄 촘스키를, 호화 주택 몇 채씩에다 엄청난 수입으로 부유한 생활을 즐기면서도 가난한 민중을 옹호하는 좌파 진보인 듯이 떠드는 위선자라고 비판한다. 이렇듯 진보를 외치며 도그마에 빠져 사는 우리의 정치인과 지식인의 기회주의적 처신이 가뜩이나 힘든 시국을 더욱 더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1995년 앤서니 기든스가 서울을 방문했을 때 한 말이 기억난다.

“우리는 시장에 의해 움직이는 역동적 경제와 정의·평등·연대의 가치를 조화시키는 틀을 짜 나가야 한다. 이러한 가치는 우리가 포기할 수도 없고 포기해서도 안 되는 귀중한 인류의 자산임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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