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자 조선일보 오피니언면에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국제정치학)가 쓴 시론, "'전시 작전권' 전환, 평시가 더 문제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현재 한미 양국이 공유하고 있는 한반도에서의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을 2012년 4월 17일까지 분리하기로 한 결정은 앞으로 한국의 안보와 한미동맹 관계에 무슨 영향을 미치게 될까. 그간 제기된 주된 논란은 연합군사체제가 보다 결속력이 약한 공동방위체제로 전환될 경우, 한미 간 효율적인 군사협조가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그중에서도 논쟁의 핵심은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미국이 함께 싸워줄 것인가이다. 이는 설사 같이 싸워준다 해도 증원전력의 규모는 현재의 수준보다 줄어들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일리가 있는 걱정이다. 전쟁을 처음부터 함께 수행하게 돼 있는 한미연합사 체제가 해체되면 미국의 참전결정은 정치적 판단에 좌우될 공산이 커지기 때문이다. 미국의 적극적인 협조를 다짐하는 문서가 마련될지라도 미국 쪽에서 그 문서를 지킬 여건과 마음까지 늘 유지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엄청난 비용과 노력을 들이더라도 ‘미국 변수’에 모호성이 존재하는 한, 안보상황은 아무리 잘한다 해도 지금보다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전작권의 전환문제는 앞으로 전쟁 상황이 아닌 평시에도 한미 안보관계를 괴롭히는 골칫거리를 양산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전작권 논의의 출발부터 동맹정신은 훼손되었고 엄연한 군사문제가 감정적으로 다뤄지는 사태가 빚어지지 않았는가. 노무현 대통령의 집요한 소신이 마침내 한국정부의 대미 전작권 분리 요구로 나타났고(2005년 9월) 미국은 ‘이러한 취지에 동의는 하되 논의는 신중히 하자’는 태도를 보이다가 돌연 입장을 바꾸어 오히려 얼른 가져가라고 재촉(2006년 7월)하기에 이르는 과정을 되짚을 필요가 있다.

    안보의 약화를 무릅쓰면서까지 안보주권을 되찾고 싶다는 한국 측의 궤변이 아무리 어이없다 하더라도 미국은 그러한 요구를 뿌리칠 수 없었을 것이다. 대화의 코드가 다른 한국 정부를 상대로 ‘동맹의 바람직한 미래상’을 일방적으로 설교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미국은 당장 취할 수 있는 명분과 실리를 택했다. 옳건 그르건 한국이 원한다면 미국도 지지한다는 명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정보획득, 병력동원, 무기체계 이전 등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필요로 하는 아쉬운 부분이 더욱 많아졌고 미국은 주둔비용은 절약하면서도 한국에 대한 협상의 칼자루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전작권의 분리 문제는 한미연합사령부를 대체하는 새로운 독립적 군사지휘체계를 서로 따로 만들고 이들이 상호 협조하는 메커니즘을 구축한다고 해서 끝날 일이 아니다. 우리는 만에 하나 전쟁이 일어나게 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으며 그러한 노력을 펴는 모든 시간은 평시상황이다. 분가해 나온 한국군이 평소에 전시에 대비한 독자적 전쟁수행능력을 구비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미국에 의지하고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할 상황이 비일비재할 것이다. 예전에는 그냥 같이 보던 위성사진도 양국 관계의 여하에 따라 비싼 값을 치를 수도 있다.

    전작권 분리 이후에 한국이 자기방어 능력을 갖추는 문제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한반도의 안보정세에 관한 판단을 한미가 같이 하는가이다. 2·13 6자 합의가 나오기 무섭게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초청하고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미국에 보내는 등 북한의 ‘평화공세’가 현란해지고 있다. 한국정부가 북한의 핵 폐기 여부에 초점을 두지 않고 대북지원에 먼저 뛰어든다면, 또 협상을 통한 통일에만 집착하여 북한내부의 급변사태에 뒷짐만 지고 있을 생각이라면 전작권 분리 이후의 한미 간 전략공조는 설 땅이 없을 것이다.

    전작권 문제가 불거져 나와서 한미관계가 나빠진 것이 아니라 이미 나빠진 한미관계의 여파로 전작권 문제가 터진 것이다. 제도가 아무리 바뀐다 해도 결국 이를 떠받치는 것은 동맹정신이다. 이 점을 이해하는 포스트 ‘노무현-부시 조합’이 과연 등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