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28일자 오피니언면 '포럼'란에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상임대표인 조전혁 인천대 교수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위헌 논란을 빚고 있는 현행 사립학교법 재개정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일점, 일획도 못 고친다”는 태도에서 “검토해 보자”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재개정 논쟁의 핵심은 역시 개방형 이사에 있다.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던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목사님들의 집단 삭발에는 기가 질렸나 보다. 아니면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표’ 다 뺏길까봐 겁을 먹은 것인가. 열린우리당은 종교계 사학의 경우만 ‘예외로’ 종단이 개방형 이사의 2분의 1을 추천하는 것을 허용하도록 시행령을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정 이후 현행 사학법은 줄곧 위헌 시비에 휘말렸다. 많은 헌법학자들이 개방형 이사를 포함한 주요 개정 조항들이 위헌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사학 운영의 권리주체는 분명히 사학재단 이사회이며, 이사회를 구성하는 이사들의 임면은 학교운영위원회나 대학평의원회 등과 같은 제3자가 강제할 수 없는 ‘자유권적 기본권’이라는 헌법적 논리에서다. 필자를 포함해 사학(私學)과 일절 이해관계가 없는 인사들이 개정 사학법을 반대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종교계 사학에 대해서만 시행령을 통해 예외를 인정하겠다는 열린우리당의 방안은 또 다른 위헌 시비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는 일반계 사학을 이유 없이 차별하는 처사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는 헌법의 기본원칙 아니던가. 더욱이 모법(母法)에 개방형 이사의 선임 절차를 규정하고 하위 법령인 시행령을 통해 예외를 인정한다는 것은 법 이론에 문외한인 필자가 봐도 정당치 못하다. 은유(隱喩)하자면 “한강 상류에 진흙물을 풀어놓고 하류에서 정수기를 나누어 주는 격”이다. 그나마 모두에게 정수기를 나눠주는 게 아니라 종교계에만 주겠다는 것이다. 종교 재단이 아닌 일반계 사학은 만만하다는 ‘정치적’ 계산인가.

    개방형 이사보다 현실적으로 더 심각한 것은 임시이사(관선이사) 관련 조항이다. ‘학교법인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거나 손해가 생길 우려가 있다고 인정한 때’로 돼 있던 관선이사 파견 사유 조항이 ‘학교법인의 정상적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될 때’로 바뀌었다. 불순한 의도를 가진 개방형 이사나 학교 내부의 불만세력이 학교를 ‘시끄럽게’ 하면 교육부나 교육청이 자의적으로 임시이사를 파견할 수 있도록 길을 턴 것이다.

    노무현 정부 들어 두드러진 특징은 ‘정치적 임시이사’가 급증했다는 점이다. 구(舊) 여당의 지역구위원장, 관변 시민단체 임원들이 마치 전리품처럼 임시이사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모 사학재단의 경우 수익사업체까지 경영의 ‘경’자도 모르는 임시이사의 측근으로 채워졌다. 그 결과 십수년 동안 흑자를 내왔던 사업체가 단번에 적자로 돌아섰다. 국회 교육위 이주호 의원은 임시이사를 파견하기 이전과 이후 사학의 성과를 비교분석한 바 있는데, 임시이사 파견 이후 대부분 성과가 나빠졌다고 결론 내린 바 있다. 차제에 임시이사 관련 조항은 ‘관치’나 ‘정치’가 학원에 뿌리박지 못하도록 반드시 정비해야 한다.

    사학법 재개정 문제는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그리고 법치의 시금석이다. 어정쩡한 정치적 타협은 결코 안 된다. 미국·일본·유럽·대만 등 어디에도 우리나라와 같이 사학을 옥죄는 법은 없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조차 사학은 폭넓은 자유를 누린다. 원칙적으로 사학법은 재개정이 아니라 폐기가 옳다. 교육법과 민법으로 충분하다. 비리사학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사학비리가 정녕 문제라면 현행 사학법보다 훨씬 가혹한 ‘합헌적 대체입법’도 얼마든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