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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3일자 오피니언면 '태평로'란에 이 신문 신효섭 논설위원이 슨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히며 소개합니다.
대통령은 최근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만나 여당 진로에 대해 “개문발차(開門發車)하고 가다가 언제든 손님이 있으면 태우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열린우리당을 깨지 않고 대통령선거를 준비해 가다 당 바깥에서 좋은 후보가 찾아지면 영입하면 된다는 뜻이다. 곧 열린우리당 당의장이 될 정세균 의원도 10일 “(열린우리당의 대선 후보 선출 방식인) 오픈 프라이머리는 그야말로 누구나 사절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정 의원은 심지어 “한나라당의 개혁적 인사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열린우리당을 탈출했지만 곧 그 당과 ‘통합의 바다에서 만날’ 사람들도 생각은 비슷하다. 강봉균 의원은 6일 “(정치권밖 인사들 가운데) 국민이 관심을 갖는 어떤 분과도 적극적으로 접촉하겠다”고 했다. 기자들이 탈당파가 만들 새 정당의 대선후보에 대해 묻자 한 말이다. 김한길 의원도 “비정치권의 훌륭한 분들을 찾아 신당 창당의 주역이 되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과 탈당파를 통틀어 여권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정치인들의 지지도는 모두 합해도 야당 유력주자 한 사람 지지도의 5분의1도 되지 않는다. 곧 상황이 나아질 기미도 없다. 그러니 여권 사람들이 저마다 ‘지금부터 정치권 밖에서 될 만한 후보를 찾아 모셔오겠다’는 것이다. 정치경력 몇 개월짜리 신인(新人)을 집권세력의 대통령후보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정말로 보통 사람들은 아니다. 세계 어느 나라 정당, 그것도 집권당이 선거를 10개월밖에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태연하게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을까. 1987년 대통령직선제가 다시 실시된 이후 유력 정당의 대선후보 중 정치경력이 가장 짧았던 사람이 97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였다. 그런 이 후보도 96년1월 한나라당 전신인 신한국당에 들어가 총선 선대위 의장, 당 대표를 지낸 뒤에 1년6개월 만에 대선후보가 됐다. 여권은 지금 이 기록을 갈아치우려 하고 있다.
선거에서 정당은 후보라는 상품을 내놓는 공급자이고 유권자는 그 상품을 살지(당선) 말지(낙선)를 결정하는 소비자이다. 소비자를 아끼고 존중하는 공급자라면 소비자에게 자기 제품에 대한 충분한 정보와 생각할 시간을 주려 하는게 당연하다. 그래야 소비자는 상품의 품질이 고급인지, 성분이 몸에 해롭지는 않은지, 제조회사는 믿을 만한지, 유통기한은 지나지 않았는지 따져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집권세력에게는 이런 ‘성실한 공급자’가 될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유권자들에게 후보를 제대로 검증할 여유조차 주지 않겠다는 속셈이다. 국민들더러 ‘잔말 말고 우리가 생각하는 스케줄대로 따라 오라’고 윽박지르는 것과 뭐가 다른가. 국민을 무시해도 이렇게 무시할 수가 없다.
정치학 원론을 보면 정당은 ‘정견(政見)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정치권력을 목표로 공통된 정책에 입각해 만든 정치결사체’라고 돼 있다. 정당이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 자리에 올리고 싶은 사람은 당연히 그 정당의 정책과 이념을 상징하는 인물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 정권 사람들은 지금 ‘정책이 우리와 맞든 틀리든 표만 얻을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우리 차에 올라타라’는 식이다. 심지어 멀쩡하게 야당 운동장에서 뛰고 있는 주자에게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정치 도의가 눈곱만큼만 있어도 할 수 없는 짓이다. 대선후보감들을 낚는 정치권판 ‘야 타!’족인 셈이다.
공자는 ‘정자정야(政者正也·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라고 가르쳤다. 영락없이 이 정권 들으라고 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