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12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시론 <한나라 소장파는 ‘정치갈대’인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젊은층에서 한나라당 지지도가 낮은 이유가 ‘김용갑’ 때문인가? 한가지 요인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밀어붙일 때 김용갑을 욕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은 어디에 서 있었는가. 수도이전법 땐? 사학법, 과거사법, 신문법 땐? 북한의 미사일 난사(亂射)와 핵실험 땐? 김용갑은 자신의 정체성과 철학에 따라 일관되게 노무현 정권과 김정일 정권에 저항했다. 그러면 3분의 2가 넘는 한나라당 초·재선 의원들은 뭘 했는가? 비겁하게 침묵하거나 김용갑을 욕하고 한나라당의 보수적 정체성을 비난하지 않았는가. 보수·우파 시민들이 서울역 앞에서 데모할 때 한나라당 소장파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전여옥 송영선 박찬숙을 제외한 다른 소장파는 ‘보수 골통’ 소릴 듣지 않기 위해 나타나지 않았다. 원희룡 남경필 정병국 고진화, 뭘 했는가? 그래서 한나라당의 젊은층 지지도가 높아졌다고 보는가?

    기회주의가 한나라당 소장파 세계에서 대세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젊은층이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지지를 주저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보수 골통 이미지 때문에 지지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매력적인 소장파가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노 정권의 기가막힌 국정 파탄 상황에서도 젊은층이 방황하고 있다. 소장파가 욕하는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과거 소장파 시절 어떻게 박정희 정권과 투쟁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목숨을 건 애국심과 열정으로 싸웠다. 그런 애국심과 투쟁력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노무현 김정일 정권에 맞서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체성과 역사적 정통성을 지켜주길 한나라당에 바라는 유권자들의 들불같은 분노 때문에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더 심하게 말하면 김용갑 덕을 보고 있다.

    한나라당 소장파들은 무슨 무슨 모임 간판을 숱하게 만들고 몇 차례 모여 밥먹으며 정치개혁이니 당 개혁이니 토론하는 것 같더니, 대선 주자들이 떠오르자 언제 그런 얘기를 했느냐는 듯이 입 딱 씻고 대선 캠프로 야반도주하듯이 넘어가 줄을 서고 있다. 박형준은 어디로 갔고, 남경필은? 이런 식으로 이름깨나 알려진 소장파는 열린우리당의 탈당파보다 더 기회주의적으로 타이타닉호에 탄 사람들처럼 처신하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대선 후보로 누가 되는 것이 차기 공천과 국회의원 선거에 유리하느냐에 따라 줄대기를 하고 있다. 줄을 섰던 대선 예비후보의 지지도가 떨어지면 또 다른 유력 후보한테 우르르 달려간다. 대선 캠프에서 부르지 않아도 제발로 달려간다. 철새처럼 날아가고 갈대처럼 흐느적거리고. 이게 그 이름도 신성한 소장파의 행태란 말인가.

    한나라당 소장파는 크게 4부류인 것 같다. 대권을 노릴 만한 자격과 경력도 없는 인물들이 대권 도전으로 이름값이나 올리려는 ‘자기 착각형’, 열린우리당의 통합신당 창당에 참여해도 정체성 혼란을 겪지 않을 ‘위장 보수파형’, 지하철 잡상인들이 어느 역에서 내릴지 모르듯이 오직 공천만을 노려 대선 캠프에 이중 삼중으로 줄을 대는 ‘지하철 생계형’, 누가 되든 금배지만 달 수 있으면 상관없으니 지역구에 침잠해 표 관리나 하는 ‘동네 국회의원형’이다.

    정권교체가 안돼도 검은 색 리무진 타고 다니며 의원님, 의원님 소릴 듣고 사는 데 문제만 없으면 괜찮다는 의식이 소장파 사이에 팽배해 있다. 이회창의 1997년, 2002년 대선 패배 때 소장파가 보였던 눈도장, 줄 바꿔서기 등 철새 행각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노장 의원들보다 더 약삭빠르게 줄 서기, 줄 바꾸기를 하고…. 이미 두 당, 세 당으로 분당이 되어 있다. 한나라당 빅3가 경선에 참여하고 경선 결과에 승복한다 해도 분열된 당력이 다시 합쳐지기 어려울만큼 감정싸움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소장파가 존재하는 야당이 정권을 찾아오겠다고? 대선 때 목숨을 건 전쟁 한판을 벌여야 할 ‘전위조직’이 이처럼 ‘정치 갈대화’했는데도 노 정권을 싫어하는 국민이 정권을 거져 가져다줄 것이라고? 소장파의 대각성이 없다면 이번 대선은 또 물 건너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