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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9일 사설 <‘대한민국 장관’과 ‘서울 장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듣는 사람도 괴롭고, 전하는 사람도 괴로운 말은 안 하는 게 좋다. 이게 보통 사람의 상식이다. 이런 상식이 무너지니 또 한마디 안 할 수 없게 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7일 경북 안동에서 열린 균형발전 보고회에서 “지방 문제와 관련된 대통령令령은 누가 만드느냐. 장관이 만든다. 장관은 어디 사느냐. 서울에서 일류대학 나온 사람들 아니냐. 서울에서 아침 점심 저녁 먹고 오페라도 서울에서 보는 사람들이 지방에 관해 무엇을 알겠느냐”고 했다. 대통령 말 속의 키 워드(Key word)는 ‘서울 사람’ ‘일류대학 나온 사람’ ‘오페라 보는 사람’이다. 이 사람들은 지방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한 꺼풀 더 벗기면, 그 바닥엔 이런 사람들은 좋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대통령의 가치 판단이 깔려 있다.
지방에 자치입법권이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말하다가 평소 마음에 담고 있던 속생각이 그대로 튀어나와 버린 모양이다. 3년 전에도 노 대통령은 강원도에서 “서울에서 강남 사람과 아침 점심 차를 먹고 균형발전 정책이 나올 수 없다”고 했었다. 자신이 임명한 장관들을 눈앞에 두고 “뭘 알겠느냐”고 깔아뭉갠다는 것은 정말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다.
노 대통령이 임명한 총리 이하 국무위원 20명 중 서울에서 아침 점심 저녁 먹지 않는 사람이 없고, 그중 18명이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다. 이 중 대부분은 시골에서 나서 시골에서 초·중·고교를 나온 사람들이다. 대통령 말에 따르면 그래도 이들은 지방에 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로 국무회의를 구성해 거기서 매주 뭘 한다고 장시간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대통령이다.
며칠 전에는 대통령의 전위부대인 ‘국정브리핑’이 부동산 정책 실패를 노 대통령이 임명한 경제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 탓으로 돌리더니, 이날은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제 얼굴에 침 뱉기를 했다. 장관들은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따라 한 사람들이지만, 서울에서 대학 나와 밥 먹고 산 죄로 언제 ‘국정브리핑’에 호출돼 균형발전 정책 실패의 책임을 뒤집어쓰게 될지 모를 처지다. 국민이 망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