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8일자 오피니언면 '포럼'란에 신중섭 강원대 교수가 쓴 <국민심판권 박탈하려는 ‘탈당 연극’>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우리는 기득권을 포기함으로써 국민통합 신당의 밀알이 되기로 했습니다.” 열린우리당 의원 23명이 집단 탈당을 결행하면서 발표한 선언문의 일부다. 태생에서부터 말이 많았던 열린우리당은 집단 탈당으로 분당과 해체의 위기를 맞고 있다. 새로운 정치, 잘 사는 나라 등 4대 강령을 채택하고, 100년 동안 집권 가능한 정당을 만들자던 다짐이 산산조각 나고 있는 것이다.

    국회의원 23명의 탈당으로 열린우리당은 원내 제2당으로 추락하고, 노무현 정부의 남은 1년 동안의 국정은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이들은 결국 노 대통령과 같이 갈 수 없어 탈당함으로써 12월 대선에서 받아야 할 국민의 엄혹한 심판의 화살을 피하면서 내년 총선에서 새로운 기회를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탈당 의원들이 무슨 명분을 내세우든 그들의 행위는 그동안의 정치 행위에 대한 책임 회피에 지나지 않는다.

    불과 3년여 전에 ‘100년 정당’을 외치던 목소리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우리는 열린우리당의 분당 앞에 당혹스러움과 함께 이런 정치인들을 둔 국민으로서 한없이 부끄러움을 느낀다. 열린우리당의 분열은 정당 정치의 좌절이고 민주주의에 대한 반역이다. 이들의 행위는 열린우리당이 내건 창당 이념에 대한 배반이고 지난 총선에서 제1당으로 만들어준 유권자들의 의지를 유린하는 정치적 범죄 행위다.

    지금 열린우리당이 취해야 할 정당한 태도는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노 대통령과 공동 운명체로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불리할지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책임 있는 정치인의 도리이고 국민에 대한 예의다. 탈당 의원들은 ‘참회와 새출발’이 아니라 그동안의 정치 행위에 대해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탈당은 선거를 통해 정치를 심판하는 국민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투표라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정부를 교체하는 것이다. 국민은 투표를 통해 현 정부를 끌어내릴 수 있다. 투표를 통해 교체될 수 있음을 아는 정치인은 국민의 의사를 무시한 정치를 할 수 없다.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제 멋대로 정치적 이익을 추구한 정치인은 선거에서 심판을 받아야 한다. 국민이 정부에 대한 심판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정당이 정부의 정책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대통령의 임기가 단임인 우리의 정치 현실에서 다음 대통령 선거는 정부 여당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열린우리당은 끝까지 대통령과 운명을 같이하는 공동 운명체로 남아 연말 대선에서 심판을 받아야 한다.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연말 대선은 1차적으로 노 대통령과 그를 정책적으로 지지해온 여당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다. 노 정부의 공과가 대통령에게만 귀속될 수는 없다. 정치의 책임을 대통령과 그보다 더 영속적인 생명을 지닌 정당에 물어야 한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국민은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할 수 있고 정부 여당의 올바른 정치를 견인할 수 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자신의 소속 정당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은 탈당 명분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탈당 의원들은 ‘미래’와 ‘선진’을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책임이 없는 곳에 ‘미래’와 ‘선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동안의 정치적 실패에 대한 치열한 반성과 국정에 대해 국회의원으로서 감당해야 할 책임의식도 없다. 우리는 이들에게 따끔한 국민의 채찍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들이 지키려는 정치적 이익을 국민의 이름으로 박탈해야 한다.

    무책임한 정치인들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투표를 통해 그들을 심판하는 국민의 능력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 무책임한 정치인에 대한 심판은 국민의 몫이다. 아직 국민의 역할은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