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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6일자 오피니언면 '오후여담'란에 이 신문 이신우 논설위원이 쓴 '남탓'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물려받은 대한민국의 경제 상황은 비참함 그 자체였다. 한국 국민의 1인당 국민소득은 60~80달러에 불과했다. 아프리카의 웬만한 나라만도 못한 생활 수준이었다.
당시만 해도 화전민 가운데는 식량을 아끼기 위한 극한적 수단으로 겨울 한 철 동안 ‘동면’을 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주민들은 부족한 식량을 절약하기 위해 하루 감자 한두 개만 먹고 하루종일 잠자고 있었습니다.”(김충남 ‘대통령과 국가경영’). 날씬한 몸매를 위해서라면 일부러 굶기까지 하는 요즘의 한국인들로서는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한국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돈 3000만달러를 얻고자 찾아간 독일에서 현지 파견돼 있던 한국인 광부나 간호사들과 만나 애국가를 부르다 서러운 나머지 함께 눈물을 흘려야 할 정도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앞선 정부의 중화학공업화 전략이 벽에 부딪치면서 엄청난 경제위기 속에 정권을 이어받아야 했다. 1980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3.7%였으니 얼마만큼 어려운 상황이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김영삼 정권 말기에 터진 외환위기로 인해 국제통화기금(IMF) 신탁통치를 감수해야 했다. 두 지도자 모두 이렇듯 경제 위기를 물려받았으나 슬기롭게 극복하고 다음 정권에 정상적인 경제를 물려줄 수 있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스타일은 좀 다르다. 노 대통령은 지난 신년 연설을 통해 “나와 참여정부는 민생문제를 만든 책임이 없다”고 말했다. 만일 있다면 모두가 앞선 정부 시절에 생긴 문제들을 물려받았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다시 말해 스스로 저지른 잘못은 아무것도 없으니 지금 당장 경제가 어려운 것을 갖고 책임을 묻지말라는 것 아닌가.
노 대통령의 남탓은 전 정권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난달 31일의 ‘참여정부 4주년 기념 국정과제위원회 합동심포지엄’에서도 “참여정부 ‘힘없는 정부’될 수밖에 없었습니다”라면서 “여소야대, 언론의 흔들기”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박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국민에게 열심히 노력해 잘살아보자고 했을 뿐 앞 정권 탓을 한 적이 없다. 전두환, 김대중 전 대통령도 남 탓하지 않았다. 그저 지도자로서 자기에게 주어진 국가적 역경과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