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일보 5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백화종 편집인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보통, 아버지의 동생이 장가들지 않았으면 삼촌이라고 부르고 장가를 들면 작은아버지로 올려 부른다. 그러니까 삼촌이나 작은아버지나 경상도 사투리로 거칠게 말하면 “가(걔)가 가(걔)”다.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이 삼촌에서 작은아버지로 변신하겠다고 난리다. 신당으로 장가들어 자신을 열린우리당 호적에서 지워버리겠다는 것이다. 총각 삼촌 때의 못된 짓들을 사람들이 잊어주리라는 계산에서다.

    노무현호가 난파하면서 이처럼 변신하려는 군상들의 추한 모습이 여러 유형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 첫째가 전광용 소설의 ‘꺼삐딴 리’형이다. 일제, 소련군 진주 시절, 미군정을 관통하면서 늘 부귀영화만 좇는 소설 속의 이인국 같은 인물들이다. 김대중 정권에서 누릴 만큼 누렸으면서도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자 김대중 당을 깨고 노무현 당을 만드는 데 기치를 높이 든 대가로 당과 정부에서 요직을 섭렵하던 사람들. 상황이 어려워지자 다시 노무현과 당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양지를 찾아 보따리를 싼다.

    그 둘째가 위장취업형이다. 독재정권 시절의 위장 취업자들은 민주화를 위해 신분을 속이고 가시밭길을 택했다. 그러나 지금 여권의 많은 이들은 금배지, 장관 자리 등 개인의 영달을 위해 소신과 색깔을 속이고 위장취업을 한 것이다. 옛날 잘 나가던 경력 등에 비추어 이 정권과는 과(科)가 틀린다싶던 사람들이 무임승선하여 호의호식하다 정권이 기울어지니까 뒤늦게 코드와 이념이 애초부터 안 맞았다느니 운운으로 먹던 샘에 침을 뱉는다.

    그 셋째가 뭐 뀐 놈이 성내는 형이다. 급진 좌경으로 한술 더 떠놓고 민심이 떠나니까 냄새난다며 정권에 욕하고 국민에게 삿대질이다.

    그 넷째가 순절(殉節)형이다. 그래도 노 대통령 또는 당과 함께 하겠다는 사람들로 그나마 나은 편이다. 386을 중심으로 한 젊은 측근들과 현 지도부 등이다. 편의상 순절형으로 이름 붙였으나, 사실은 이들도 지금 뛰어내리면 익사하니까 시간을 갖고 명분을 갖추면서 새 구조선을 찾아보자는 것이지 그냥 죽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 다섯째가 염상섭의 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에 나오는 ‘나’와 같은 형이다. 암담한 현실 속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무력감만 확인하는 지식인 부류다. 가라앉는 배를 보면서도 고칠 능력도, 그렇다고 뛰어내릴 용기도 없어 망연자실해 있다.

    여당 인사들을 분류할 때 위 다섯 유형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여러 유형에 겹치는 사람들도 많다. 꺼피딴 리형과 위장취업형 등에 두루 걸쳐 있는 사람들이 그 한 예이다.

    배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은 가라앉는 배와 함께 그냥 수장될 순 없는 노릇 아니냐고 변명할 것이다. 또 정권과 코드가 맞지 않고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권을 떠나는 게 잘못이냐고 항변할 것이다.

    그들에게 반문하고 싶다. 당신들은 배가 가라앉도록 만드는 데 일조하지 않았느냐고, 또 이 정권의 코드와 이념을 모르고 배지를 달았느냐고, 그리고 지금까지 노 대통령에게 그리 항해하면 난파한다며 필사적으로 만류해봤느냐고.

    한마디 더 보태고 싶다. 이건 아니라고 판단했다면 추한 모습 보이지 말고 정덕구씨처럼 의원 배지를 떼고 정계를 떠남으로써 반성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라고.

    여당 의원들이 그런 당부에 귀 기울일 염치를 가졌다면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심판자인 국민이 다음 선거 때까지 아무리 삼촌이 작은아버지로 변신해도 “가가 가”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는 수밖에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