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27일자 오피니언면에 고정욱 소설가가 쓴 <‘작가회의’친북․반미부터 바꿔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민족문학작가회의(작가회의)가 단체명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쓰던 자랑스러운 용어 ‘민족문학’을 뺀다고 한다. 

    동료 작가의 입장에서 나도 감회가 없을 수 없다. 1987년 6월항쟁 당시 나는 문학의 열병을 앓던 백면서생의 문학도였다. 그때의 뜨거운 민주화 열기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데, 당시 역사의 격변을 이끈 문인들이 만든 작가회의가 딱 20년, 사람으로 치면 성인이 된 뒤 이름을 바꾸는 것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20년이 흘렀다. 우리 사회는 정말 변해도 엄청나게 변했다. 그 사이에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했는데, 우리는 온통 이념과 사상의 혼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6·25가 남침이라는 말도 마음놓고 못하는 시대가 되었고, 주로 남한의 퍼주기지만 남북 경제교류가 진행중이며, 혈맹인 미국과의 관계조차 소원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언뜻 보면 그렇게 시대적 상황이 바뀌었으니 이름을 바꾼다는 표면적 이유 자체는 그럴 듯하다. 해외 문인단체 등과의 교류 때 ‘민족’이 들어간 것 때문에 오해를 받기도 하고, 민족을 내세우는 것이 현 시대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었단다. 열린 민족주의를 지향해야 하므로 좀더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도 하는 모양이다.

    그들 스스로 민족문학이라는 개념을 용도 폐기하려 하니 내가 굳이 그 유래와 역사를 여기서 상술할 필요는 없다.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문학은 그저 예나 지금이나 더도 덜도 아닌 문학일 뿐이었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그 문학을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민족이니, 참여니 하며 마음대로 농단하던 사람들이 이제 여론의 향배와 정세의 변화가 불리하게 작용할 것 같으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 시치미를 떼려는 데에 있다.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최근 행태에 대해서는 내가 이미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지적한 바가 있다.(문화일보 2006년 11월4일자 ‘포럼’) 문제는 그들의 그러한 노선을 고치려는 자세가 지금까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름을 바꾸면서 문학의 순수성을 외면해 온 그들의 친북·반미 성향의 정치적 편향성이 바뀌리라고 생각되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러니 이름을 바꾸려는 진짜 의도가 무엇인가 하는 의구심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바야흐로 대선의 해에 들어선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집권 여당의 탈당 도미노 전주곡에서, 대권주자와 그 추종 세력의 이합집산 등이 마치 가라앉는 난파선에서 쥐들이 가장 먼저 살겠다고 빠져 나오는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그러니 한동안 따스한 양지에서 햇볕을 쬐며 정권의 비호 아래 영일을 구가한 권력 주변부 어용 단체들의 애타는 심정은 오죽하겠는가. 화무십일홍에 달도 차면 기우는 법임을 미리 알고 부산 떠는 것이 호떡집에 불난 것만 같다.

    작가회의의 명칭 변경은 훗날 있을지도 모르는 비판과 질책에 대해 미리 물타기를 하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들의 성향과 노선이 한국 전체 작가들에게 이미 충분히 유포됐으니 ‘민족문학’ 떼고 가도 된다는 자신감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그건 진정 오산이다. 그동안의 민족의 현실을 외면한 채 기고만장했던 그들의 행태를 국민이 낱낱이 기억하고 있으니 꼼수로 거센 분노와 응징의 파도를 헤쳐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이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지향했던 ‘우리민족끼리’ 식의 친북·반미 노선을 버리고 그동안의 과오를 국민 앞에 무릎 꿇고 눈물로 사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