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2일자 오피니언면 '시시각가'란에 이 신문 김두우 논설위원이 쓴 '노무현을 위한 변명'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빛을 찾고 절망 속에서 희망을 발견해 내는 것은 생존의 지혜다. 어둠과 절망에 깊이 침잠해버리면 삶이 너무 고달파진다. 한국의 근.현대사에서도 이런 지혜를 동원해 보자. "왜 우리는 만날 요 모양 요 꼴인가"라고 개탄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벌써 이만큼 왔구나"하며 스스로 대견스러워할 수도 있다. 1945년 광복 이후 단 한 해도 정국이 격동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그래도 60년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한국만큼 이룬 나라가 없다. 그래서 외국인들은 "일본을 우습게 아는 지구상의 유일한 나라, 자신의 발전상과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을 잘 모르는 희한한 나라"로 한국을 꼽는다.

    역대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그래도 그들은 역사 발전의 과정에서 하나의 톱니바퀴 역할을 했다. 건국(이승만)과 산업화(박정희), 민주화로 가는 중간 디딤돌(노태우), 군사정권 종식(김영삼), 야당에 의한 최초의 정권교체(김대중) 등의 과정을 생략하고서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생각할 수 없다. 그들의 등장으로 국민은 한풀이도 할 수 있었다. 나라 없는 한(이승만)과 굶주림의 한(박정희), 민주화 세력의 한(김영삼)과 호남의 한(김대중), 진보와 좌파의 한(노무현)을 풀었다. 가슴의 응어리를 풀어냈으니 화합을 이룰 터전은 마련된 셈이다. 그런 측면을 좀 너그럽게, 좀 넉넉한 시선으로 봐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노 대통령은 곧잘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느냐"고 하소연한다고 한다. 비공개적으로 노 대통령을 만난 사람들이 전한 얘기다. 억울한 대목이 왜 없겠는가. 정치개혁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아니 김대중 정권 초기인 98년까지 국회의원 선거에서 50억, 70억, 100억원대의 돈을 뿌려 당선된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권력 비리나 부정부패가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규모가 현저히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수출 3000억 달러 달성, 주가지수 1400 고지 점령 등의 경제성적표도 내놓을 만하다. 노 대통령이 잘해서 그렇게 됐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역대 대통령의 경제성적표란 그런 것이다. 인위적 경기부양책을 썼더라면 당장은 욕을 덜 먹을 수 있었지만, 부작용을 고려해 최소화하려 했다. 역대 정권의 과제였던 방폐장 건립 문제도 해결했다. 과거사를 몽땅 부정하려 한다고 비난하지만, 국립박물관 건물을 "벽돌 한 장 남기지 말라"고 했던 YS나 '제2건국'을 외쳤던 DJ도 노 대통령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왜 나만 갖고 그러느냐" "왜 성과는 평가해 주지 않느냐" 하는 억울함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개나 소나 노 대통령을 비판하는 시절이 됐다. 노 대통령이 각별히 애정을 쏟았던 신문과 방송, 인터넷 매체까지 나서서 대통령에게 딴죽을 건다. 속상해할 것도 화낼 것도 없다. 노 대통령은 "그때그때 표출되는 민심과 역사 속에서 구현되는 민심은 다르다"고 하지 않았던가. 역사 속에 구현되는 민심을 믿는다면, 긴 역사 속에서 평가받는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아직도 길이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과 연금개혁의 두 가지 어젠다에 남은 임기를 걸면 된다. '4년 연임제 개헌' 같은 정치사안에 목매다가는 게도 구럭도 다 잃는다. 개헌은 대통령에게는 절실한 문제일지 몰라도 국민에게는 한가한 사안이다. 한.미 FTA가 우리 경제의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지만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하루 800억원, 연간 30조원의 국가 잠재부채가 쌓여가는 데도 역대 정권이 폭탄 돌리기를 해 온 것이 연금개혁이다. 대통령의 임기는 이런 사안에 걸어야 한다. 대통령이 차고앉아 매일 보고받고, 대책회의 주재하고, 국회 협조를 요청하고, 관련 단체 설득하고, 국민에게 호소해 보라. 그 진정성을 인정받게 되면 '오해'나 '노무현 디스카운트'를 단숨에 날려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