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9일자 사설 ‘남의 당 후보 넘보는 정당 자격 있나’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열린우리당이 갈팡질팡하고 있다. 워낙에 중심축이 없이 흔들려 왔지만 고건 전 총리의 대선 불출마 선언 이후 더 심해졌다. 본인이 원하건 않건 지명도가 있는 인물은 차례로 후보감으로 거론하더니 급기야 한나라당 후보에게까지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이번 대통령선거에 왜 후보를 내려 하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다.

    고 전 총리와 가까운 민주당의 신중식 의원이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범여권 통합신당 참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한 이후 논란은 열린우리당으로 확산되고 있다. "손 전 지사의 정치적 지향과 이념이 한나라당에 맞지 않는다"(양형일 의원)느니 "손 전 지사를 우리가 끌어오기 위해 접촉 중"(정봉주 의원)이라는 말까지 한다. 본인이 "내가 벽돌이냐. 손학규가 없는 한나라당은 생각할 수 없다"고 강력히 부인했지만 막무가내다.

    얼마 전에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도 열린우리당의 영입설에 불만을 표시한 적이 있다. 정 전 총장이건 누구건 훌륭한 인물을 모시겠다고 욕심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제1야당의 대선후보를, 그것도 본인이 부인하는 데도 집권당의 영입대상이라고 떠드는 것이 정치 도의상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렇게 존경한다면 진작 모셔갔어야 할 것 아닌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지지를 선언하고, 손 전 지사의 선거본부로 몰려가면 될 일이다.

    아무리 집권당의 후보 지지도가 낮고, 인물난을 겪고 있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경쟁 정당의 인물을 후보로 모셔간다는 얘기는 세계 정치사의 코미디가 될 것이다. 그런 당이 존재할 이유가 있는가. 이러니 야당을 흔드는 정치공작이라는 의심까지 나오는 것이다.

    4년 동안 집권당이란 꿀단지를 끌어안고 있다 선거 때가 되니 갑자기 뻐꾸기처럼 남의 둥지에 알을 낳으려 하는가. 최소한의 자존심이라도 있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속이지 말고, 집권기간 동안 저질러 놓은 일에 대해선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