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1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10일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와 연구소 기능은 새벽부터 멈춰 섰다. 울산에서 노조의 ‘상경타격투쟁대’ 800명이 아침 7시40분 버스 22대에 나눠 탄 채 서울로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전주 아산공장에서도 지원부대가 출발했고 현대차와 관계도 없는 기아차, GM대우, 쌍용차노조원들과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 사람들까지 합류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자 현대차 직원들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노조는 파업으로 생산 목표 달성을 하지 못하고도 성과급을 더 달라며 지난달 28일부터 잔업과 특근을 거부했다. 회사가 원칙 대응을 선언하자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겠다며 상경타격대를 만들어 서울로 올려 보낸 것이다.

    노조원들이 몰려온다는 소식에 낮 12시쯤에는 전경버스 60여 대가 담을 따라 본사와 연구소를 3면에서 에워쌌다. 본사 1층과 2층에는 검은 복장의 전경 2500명과 사설경비원 300명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공중에서는 경찰헬기가 굉음을 울리며 본사 주변을 선회했다. 전쟁터였다.

    오후 1시30분, 본사 맞은편 도로에 모인 1000여 명의 노조원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땅이 울리도록 틀어놓고 회사를 향해 “타도”를 외쳤다. 지난 3일 시무식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그 기세 그대로였다.

    버스를 타고 이 현장을 지나던 시민들은 상경 시위대의 ‘타도’ ‘타도’ 함성에 버스 창문을 열고 “아예 다 같이 망해버려라”고 야유를 보냈다. 이 시위로 교통이 막혀 차에서 내려 걸어가던 한 시민은 노조원의 붉은 조끼 뒤에 새겨진 ‘살맛 나는 일터’라는 구호를 보며 “노조만 살 맛 나는 일터냐”고 했다.

    서울의 현대자동차에서 노조와 회사가 ‘타도’와 ‘회사 사수’의 응수를 교환하는 시간, 미국 디트로이트에선 벤츠 도요타 BMW 아우디 등 세계적인 자동차기업들이 최근 개발한 신차들을 세계의 바이어들에게 선보이고 있었다. 이 세계의 자동차 쇼 윈도에 올려진 현대차는 작년 11월 국내에서 이미 내놓은 베라크루즈뿐이었다.

    현대는 작년에도 노조 반대로 세계시장을 겨냥한 대형차 BH프로젝트 공장 건설계획을 늦출 수밖에 없었다. 세계 자동차의 명포(名鋪)들이 쫓고 쫓기는 각박한 생존경쟁을 벌이는 시간에 현대차 본사 앞에선 노조원과 전경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현대자동차의 한 직원이 “노사관계를 바로잡을 수 만 있다면 두세 달 폐업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내뱉은 한마디가 한숨처럼 들렸다.

    노조위원장은 시위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12일 대의원대회에서 파업 결정이 나오면 다음 주부터 파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현대차의 5년 후, 아니 3년 후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현대차노조의 이 용맹스런 노조위원장은 그때 무슨 얼굴을 하고 오늘을 되돌아볼까. “그래 우리가 회사 문을 닫게 했어”라고 자랑스러워할까.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남편과 아버지의 이 모습을 자랑스럽게 지켜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