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유력 대권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가 자신들의 텃밭인 대구경북(TK)인 신년교례회에서 맞닥뜨렸다. 두 대선주자는 텃밭다지기를 위한 신경전을 펼치기보다는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는 등 화기애애한 모습을 연출했다.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는 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2007 재경 대구경북인 신년교례회'에 나란히 참석해 각자 인사말을 통해 대권의지를 다졌다. 두 대선주자는 미리 도착한 강재섭 대표와 함께 손을 맞잡고 사진기자들을 위해 자세를 취해주는 등 시종 여유있는 분위기를 이어갔다. 박 전 대표보다 늦게 행사장에 들어선 이 전 시장은 악수를 나누며 "손은 다 나았느냐"고 인사했고, 박 전 대표는 "다 나았다"며 밝은 표정으로 답했다.

    이 전 시장은 또 건배제의 시간에 박 전 대표가 가운데에 서게 하기 위해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기도 했지만, 박 전 대표는 한사코 만류하는 장면도 보였다. 박 전 대표는 수십명의 취재진 속에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한 참석자를 발견하고 렌즈를 잠시 응시해주는 세심한 배려를 보여주기도 했다.

    먼저 인사말에 나선 박 전 대표는 "올해는 나라 미래를 결정짓는 역사적인 해"라며 "나라를 구하는 길에 내가 적극 나서겠다"고 대권의지를 피력했다. 박 전 대표는 "치솟는 집값, 잃어버린 일자리, 세금폭탄에 국민이 좌절하고 있다"며 "모두 힘을 모아 나라를 바로 세워야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시장도 "여야 인사가 다 있어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해 섭섭하다"며 농을 던진 뒤 "국민의 염원이 한나라당 염원과 같을 것"이라며 "잘사는 나라를 위해 힘을 모으는 데 밑거름이 되겠다"고 필승을 다짐했다. 이 전 시장은 또 "천신만고 끝에 탈출한 납북 어부를 대하는 정부 관리의 모습을 보고 실망했다"며 "경제도 어려운데 국가안보도 이쪽저쪽 눈치를 보며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정부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느냐"고 노무현 정권을 비판했다.

    TK출신의 두 대선주자는 또 참석자들을 향해 지역과의 인연을 강조하기도 했다. 박 전 대표는 "가족같은 분들"이라며 친근감을 표하며 "나라와 나를 키워준 분들의 힘과 지혜를 모아준다면 아무리 어렵더라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시장은 "서울시장 임기를 마치고 고향 경북에 갔더니 '서울사람왔네'라며 서울사람 취급하더라"는 농담으로 동질감을 과시했다.

    이날 행사장에서는 노 정권을 성토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강재섭 대표는 축사에서 "구름, 비에 비교하며 사자성어를 얘기하지만, 복잡하게 할 것 없이 올해의 사자성어는 '정권교체'"라고 말해 큰 박수를 이끌어냈다. 강 대표는 "대구경북의 자산이자 한나라당, 우리나라의 자산인 두 대선주자를 가진 당 대표로서 당을 잘 운영해 온 국민의 여망인 정권교체를 이뤄내겠다"고 강조했다.

    또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건배사에서 "내일모레로 선거가 닥쳤는데 왜 갑자기 개헌얘기가 나오느냐"며 노 정권을 강하게 질타했다. 이 전 의장은 "노 대통령이 개헌할 생각이 있었다면 '못해먹겠다'고 할 때나 대연정 얘기할 때 제안했어야 했다"며 "개헌은 다음 정권에 물려주고 대선을 공정히 관리한 뒤 깨끗히 나와라"고 요구했다.

    정권교체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 속에서 마이크를 잡은 김병준 청와대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은 "바로 반대되는 말을 할 수도 없고…"라며 머쓱해했다. 김 위원장은 "나부터 부족하고 제대로 역할을 못한 것 같아 송구스럽다"면서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한다"며 고개숙였다.

    두 대선주자는 이날 나온 노 대통령의 '4년 연임제' 개헌 제안에 반대입장을 거듭 밝혔다. 이 전 시장은 개헌찬성여론이 많다는 지적에 "사학법 재개정 여론도 시작할 때와 달라졌다"며 "국민들의 원칙적인 동의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하려면 좀더 일찍 (임기 초에) 했어야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도 "마무리할 일도 많을텐데 왜 지금 개헌이냐"며 부정적인 입장을 재확인했다.

    한편 이날 신년교례회에는 TK출신 정치권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 전 시장, 박 전 대표, 강 대표 외에도 신국환 국민중심당 대표를 비롯해 김광원 이한구 이병석 김희정 이상득 김성조 김부겸 박찬석 의원, 김범일 대구시장, 노동일 경북대 총장, 이강철 청와대정무특보, 이의근 전 경북지사, 이재용 전 환경부장관 등 여야를 구별하지 않고 많은 TK출신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성황을 이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