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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1일자 오피니언면에 김민배 정치부장이 쓴 대평로 ‘대선괴담’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요즘 여의도 정가와 관가에서는 ‘2007년 대선 괴담’이 화제다. 점심, 저녁 자리에선 으레 대선 괴담이 끼어든다. 일반인들의 망년회 자리에서도 단골메뉴로 자리잡으면서 급속히 유포되고 있다.
그중 가장 악성 괴담은 ‘유력 후보 암살설’이다. 암살에 사용하는 도구에 따라 ‘독침설’ ‘총기설’로도 불린다. 대선 막바지 국면에서 당선이 가장 유력한 야당 후보가 암살당하고, 손쓸 사이도 없이 2위를 달리는 여당 후보가 당선되어 현 여권이 재집권에 성공한다는 것이다. 암살의 주체로는 북한, 또는 북한의 사주를 받은 국내 테러리스트가 거론된다. 지난 여름부터 한나라당 내에서는 이 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되었다. 한나라당이 후보 유고 시 대통령 선거를 연기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안 제정을 추진하는 것은 이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둔 예방책의 강구이다. 실제 한 유력 대선후보는 사석에서 “내년 대선 때 총기가 등장할 우려가 있으니 방탄복을 준비해야 한다는 충고를 듣곤 한다”고도 했다.
이런 괴담이 설득력을 얻게 된 데는 “한나라당에게는 앞날이 없으며 역사의 준엄한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11월 30일, 북한 중앙통신)이라는 등 거듭되는 북측의 협박이 한몫 했음은 물론이다.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20일 당 회의에서 “한나라당과 대선후보에 대한 (북한의) 사이버 및 실제 테러 가능성에 대해 대책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문하고 나선 것도 이의 연장선상에 있다. 북한이 관련된 대선 괴담 중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내년 어느 시점에 전격적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수용해 일시적으로나마 한반도에 ‘평화 무드’를 조성한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대선 괴담의 또 다른 축은 노무현 대통령이다. 지금 여권 안팎에선 “노 대통령이 전격 사퇴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말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그 시기에 따라 ‘내년 2월 25일 취임 4주년 사퇴설’과, 한나라당 경선 레이스가 막 가열될 무렵인 ‘내년 4월 사퇴설’로 나뉜다. 노 대통령이 전격 사퇴하면서 중대선거구제나 정·부통령제 개헌을 제안, 선거판을 크게 흔들고 ‘이명박·박근혜’ 두 유력 야당후보의 분열을 꾀한다는 것이 이 시나리오의 핵심이다.
가장 최신의 대선 괴담은 독도를 무대로 한 ‘일본과 북한의 충돌설’이다. 지지율 하락에 고민하는 일본 아베 정권이 내년 어느 시점에 해저탐사선을 보내 독도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키고, 노무현 정부가 주춤하는 사이 김정일이 일본 탐사선에 미사일을 발사해 대응하면서 한반도를 국제분쟁의 중심무대로 만들어 대선판을 흔든다는 것이다.
이런 소설 같은 괴담들은 한국 사회의 안정을 해치는 독약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제 한국이 내년 대통령선거를 제대로 치르지 못한다면 이는 국가적 재앙으로 연결될 개연성이 매우 크다. 1987년 이후 20년의 역사를 쌓아온 민주적 정권교체라는 물줄기를 역류시키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자칫 남미식 대혼란을 촉발할 수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노 대통령은 새해를 시작하면서 내년 대선의 안정적 관리 대책을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 굳이 과거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정부의 대선 관리용 ‘중립내각’을 예로 들 필요도 없다. 내년 대선의 안정적 관리는 국가 안보나 경제 못지않은 국가 중대사이기 때문이다. 신당이니, 친노파니, 정권 재창출이니 하는 문제에 노 대통령이 골몰하면 할수록 대선 괴담은 더 뿌리를 깊게 내리면서 나라를 흔들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