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일 월요일 아침. 국회 한나라당 대표실에선 강재섭 대표최고위원의 주재로 최고위원회의가 열렸다.

    강 대표를 비롯해 이재오 강창희 전여옥 정형근 권영세 한영 최고위원, 김형오 원내대표, 이병석 원내수석부대표, 황우여 사무총장, 안경률 제1사무부총장, 전용학 제2사무부총장, 임태희 여의도연구소장, 김성조 전략기획본부장, 나경원 유기준 대변인, 박재완 비서실장과 당내 통일안보전략특별위원회 위원장 이경재 의원까지 참석했다. 

    그러나 이날 당 지도부가 언론에 공개한 회의시간은 총 10여분. 마이크를 잡고 발언을 한 사람은 참석한 지도부 18명 중 김형오 전재희 전여옥 의원 세 명뿐이었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책임 하에 진행중인 '사립학교법 재개정' 문제만을 언급한 뒤 끝냈고 전 정책위의장은 6자회담과 겨울철 노숙자에 대한 정부의 대책마련을 언급한 뒤 발언을 마무리졌다.

    그리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마이크를 잡는 의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강 대표가 주위 의원들을 둘러보며 발언을 할 의원을 찾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황우여 사무총장에게 "사무총장 한 마디 하시죠"라고 말하자 황 사무총장은 "비공개 때 하겠다"며 마이크를 받지 않았다. 급기야 강 대표는 "판좀 돌려요"라며 의원들에게 발언을 할 것을 촉구했다.

    한동안 머뭇거린 뒤 결국 전 최고위원이 마이크를 잡았고 그는 신당창당으로 가닥을 잡고 내년 2월 14일 전당대회를 치르겠다고 밝힌 열린당을 비판했다. 그러나 전 최고위원의 발언 시간 역시 길지 않았다. 전 최고위원의 발언이 끝난 뒤에도 마이크를 잡으려는 의원은 나타나지 않았다. 강 대표는 다시 한번 "판좀 돌려요"라고 말했으나 아무도 발언할 생각을 하지 않자 회의를 비공개로 돌렸고 유기준 대변인이 "지금부터 비공개로 진행하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공개회의는 끝났다.

    매주 월요일 아침 강 대표 주재로 열리는 최고위원회의는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는다. 시작되는 한 주를 한나라당이 어떤 이슈로 진행해갈지를 알 수 있는 자리인 동시에 주말 터진 각종 현안을 보는 당의 입장이 정리돼 나오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평소와 달리 이날 굵직한 현안이 없었을까. 아니다. 이날부터 북핵 관련 6자회담이 시작된다. 또 차기 대선주자를 대상으로 한 언론사 인터뷰 중단을 요구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방침 역시 논란거리다. 특히 당 소속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의 '성추행'의 경우 공개적인 '사과'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에도 이날 공개회의에서 한나라당은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임태희 여의도연구소장은 "국민에게 진솔하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기준 대변인은 10시 40분 비공개 내용을 브리핑하려고 기자실을 찾았다. 그러나 유 대변인은 당에 '반핵평화운동본부'를 신설했다는 내용과 모 지역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의 성추행 사건만을 언급했다. 비공개 회의는 평소처럼 30~40분 가량 진행됐다고 유 대변인은 말했다. "비공개 때 하겠다"며 마이크를 잡지 않은 황 사무총장은 비공개 회의에서도 발언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치권이 대선국면으로 접어들고 당이 차기 대선주자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당 지도부가 무기력증에 빠진 듯한 오해를 받을 만 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