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5일자 오피니언면 '태평로'란에 이 신문 신효섭 논설위원이 쓴 '말 때문에 망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정권 안에서 열린우리당의 신당 창당 문제를 갖고 대판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 보기에 열린우리당은 지지도 8%대의 ‘정치 퇴물(退物)’일 뿐이다. 그런 정당이 얼굴에 새 분칠을 하고 뭘 더 해보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 그러나 더 가관인 것은 신당 논란 무대 주역들의 몰염치한 자기 말 먹기(食言)이다.

    대통령은 최근 “평당원으로라도 열린우리당과 함께하고 싶다. 탈당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측근 의원이 전했다. 이는 자신이 몇 달 전 한 말을 정면으로 뒤집는 말이다. 대통령은 지난 1월 “고부(姑婦) 갈등을 치료하려면 서로 떨어져 있어야 한다. 당과 청와대도 생각이 다르면 떨어져 있는 게 낫다. 역대 대통령도 다 그렇게 헤어지지 않았느냐”며 먼저 당에 ‘이혼 통보’를 했었다.

    대통령은 또 며칠 전 “열린우리당이 만들려는 신당은 지역당이어서 안 된다”며 새 당을 만들고 싶으면 나가서 하라고 했다. 집권당의 핵심 현안에 가장 강력하고 직접적으로 발을 담근 것이다. 2004년 6월 “(나는) 평당원으로서 당을 지원하되 간섭은 하지 않겠다. 당이 국회에서 일사불란하게 대통령을 지원하는 것도 요구하지 않겠다”고 했던 말이 무색하다.

    당 사람들은 또 어떤가. 김근태 당의장은 지난 1월 대통령이 ‘탈당’ 풍선을 띄우자 “지금 (당의) 상황이 어려우니 그 얘긴 거둬 달라”며 대통령 발목을 붙잡았던 사람이다. 스스로 당 간판을 내리겠다고 선언한 열린우리당의 지금 사정은 1월에 비해 훨씬 나쁘다. 그런데도 김 의장은 1일 대통령이 신당론을 비판하자 “당이 나갈 길은 당이 정한다. 결론을 내리면 당원은 그 결론을 따라야 한다”고 대통령을 들이받았다. 대통령더러 신당 하기 싫으면 당을 떠나라는 통첩이나 같다.

    김 의장은 지난 10월 “(민주당을 포함해)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이 대연합해야 한다”며 민주당을 포함한 신당론에 불을 지핀 장본인이다. 그는 자신이 2003년 9월 민주당 문을 스스로 나서며 “민주당은 정치적으로 사망했다. (열린우리당으로) 평화개혁세력이 재집결해야 한다”고 한 말을 까마득히 잊은 모양이다.

    집권당 대주주인 정동영 전 당의장도 지난달 말 “(정계개편과 관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겠다. 이제 앉아만 있을 수는 없다”며 신당론 쪽에 섰다. 2004년 4월 “(당 혁신으로) 최소한 20~30년 집권세력의 토대를 구축하겠다. 최소한 한 세기는 갈 수 있는 영속적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던 사람이 겨우 2년 지나서 당을 허물자고 나선 것이다. 심지어 그는 지난 5월 지방선거 이후 정계재편을 주장하면서 “민주평화개혁세력인 민주당과도 함께할 수 있다”고 했고 최근에도 비슷한 주장을 폈다. 2004년 초만 해도 “(민주당과의 통합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민주당은 정치개혁 입법 등에서 한나라당과 공조하는 등 잘못된 노선을 걷고 있다”고 하더니 이렇게 낯빛을 확 바꾼 것이다.

    열린우리당 창당 주역인 천정배 전 원내대표는 지난 10월 “민생개혁정치에 동의하는 세력들로 대통합신당을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 (민주당을 포함해) 같은 노선을 가진 세력이 함께하는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개혁이다”라고 했다. 2003년 5월 “민주당은 아무리 개혁해도 지역구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며 민주당 가슴에 말 못을 박았던 사람이 바로 천 전 대표이다.

    이들이 국민의 눈과 귀 무서운 줄을 눈곱만큼이라도 안다면 이처럼 낯 뜨거운 식언(食言)과 표변(豹變)을 일삼지 못할 것이다. 이제 국민이 매서운 손맛을 보여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