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4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박두식 정당팀장이 쓴 <흥행 안되는 ‘노무현 드라마’>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정권에서 청와대와 여당의 관계는 늘 요란했다. 출발부터 그랬다. 2004년 6월 4일, 청와대에서 첫 고위 당·청(黨·靑) 회의가 열렸다. 당시 노 대통령은 탄핵 위기를 막 벗어난 상태였고, ‘노무현 당(黨)’이라고 할 수 있는 열린우리당은 창당 5개월여 만에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대승을 거뒀다. 이런 상황에서 노 대통령이 처음 주재하는 당·청 회의가 열렸다면, 화기애애 이상의 분위기였어야 정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도 대통령과 여당은 서로 으르렁거렸다. 발단은 노 대통령의 인사 문제였다. 한나라당을 뛰쳐나와 열린우리당에 합류한 김혁규 의원을 총리로 임명하는 것에 대해 여당 일부에서까지 공개적으로 반대 주장이 나왔던 것이다. 여당 지도부가 당·청 소통과 협력이 원활치 않다고 하자, 노 대통령은 준비해 온 메모를 들고 읽었다고 한다. 당시 노 대통령의 말을 요약하면, 청와대도 당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을 테니 당도 청와대에 대고 불필요한 주문을 삼가라는 것이었다.

    지금껏 당·청은 늘 이런 식으로 다시는 얼굴을 보지 않을 사람들처럼 설전을 펼치곤 했다. 다툼의 원인은 대개 대통령의 인사나 당 운영 방식 같은 문제들이다. 국가 경쟁력 강화나 미래 성장동력 같은 나라의 운명과 관련된 일들을 놓고 싸우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것도 조용히 만나 풀려는 노력은 생략하고 곧바로 공개 전투에 돌입한다. 같은 편끼리, 꼭 남 보란 듯이 다투는 것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 노 대통령은 노 대통령대로, 당은 당대로 자기 정치를 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지금껏 ‘탈당’이나, ‘임기 중단’ 발언 같은 극단적인 배수진을 펼치는 것으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당을 움직여 왔다. 여당이 습관적으로 노 대통령에 반기를 들어온 것 역시 정치적 셈법에 따른 것이다. 지난 2년간 당 지지율이 추락하고 재·보선에서 40전(戰) 40패(敗)를 기록할 때마다 여당은 공개적으로 ‘노무현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지금 노 대통령과 김근태 의장 등 여당 지도부가 펼치는 전투는 당·청 갈등사의 마지막 장(章)이다.

    대통령과 여당이 벌이는 요란한 다툼의 이면에는 정치를 이벤트로 보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들은 당청 갈등도 이벤트처럼 여기고 있다. 이벤트에 집착하는 이유는, 한 건의 기획이 제대로 성공하면 정치적 위기나 열세를 단번에 만회할 수 있다는 식의 ‘로또 심리’ 때문이다. 여권 사람들은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에서 두 번의 대박을 터뜨린 것은 ‘노무현 연출, 노무현 기획, 노무현 주연의 드라마의 힘’이었다고 믿고 있다.

    대선을 1년 가까이 남겨놓고 이들은 다시 한번 드라마 제작에 시동을 걸고 있다. 이번에도 노 대통령이 불을 질렀다. 또다시 특유의 탈당, 임기중단 발언으로 당을 압박했다. 열린우리당도 ‘안 그래도 등 간지러운데’ 식으로 즉각 반격에 나섰다. 대통령과 여당 중 한쪽이 죽어야 다른 한쪽이 살 수 있을 것 같은 극적인 대립을 통해, 정치적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드라마에 대한 반응이 예전 같지 않다. 우선 관객들부터 시큰둥하다. 대통령 탈당과 신당 만들기라는 진부한 소재인 데다, 그 줄거리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재탕, 삼탕한 연속극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게다가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정치 드라마 한두 편으로 풀릴 단계를 넘어섰다. 오히려 대통령과 여당의 ‘자기들만의 싸움’이 화를 돋울 뿐이다. ‘노무현 드라마’도 유통기한이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