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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5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강천석 주필이 쓴 칼럼 '국민의 소리를 들어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22일 7만4000명의 폭력 시위대가 대한민국 13개 주요 도시 중심부를 점령했다. 7개 도청과 시청을 습격했다. 해방에서 6·25에 이르는 그때 그 모습이었다. 시위대의 주력은 ‘한미FTA저지 범국민본부’가 동원한 일부 농민, 총파업 시기를 여기에 맞춘 민노총, 교원평가제 반대를 내걸고 학생을 팽개친 전교조였다. 철없는 대학생들도 이 횃불놀이를 놓치지 않았다. 오늘 이들을 한데 묶어준 동기는 반미고, 내일의 목표는 좌파민중정권 수립이다.
대한민국도 자체 방위를 위해 2만5000명의 경찰을 동원했다. 시위진압 기동대는 물론이고 운전병·행정병·일반 경찰까지 모두 거리로 내보냈다. 양측 9만9000명의 대병력이 시가전을 벌인 것이다. 요즘 국군 전투사단 병력은 8000명 안팎이다. 이 계산으로 하면 12개 사단간의 격돌이다.
시위대는 도심을 마비시키고 국민에게 자신들의 위력을 과시하고, 무정부 상태의 대한민국 모습을 전 세계 TV 화면에 내보내는 혁혁한 전과를 거뒀다. 대한민국의 전과는 초라했다. 27명의 폭력시위자를 검거했다. 시위대의 완벽한 승리다. 예정된 결과다. 대한민국은 병력규모·전의·전투장비 등 모든 면에서 시위대에 밀렸다.
대한민국에선 올 한 해 크고 작은 이런 시위가 총 8553번이나 벌어졌다. 하루 30번꼴이다. 밥과 일자리와 자유를 달라는 절절한 시위가 아니다. ‘3류 반미’와 ‘통속적 민족’을 유행가 가락에 실어 보내는 시위다.
이러고도 대한민국이 전진한다면 그게 도리어 이상한 일이다. 대한민국은 2006년 국내 총생산(GDP) 세계 11위 자리를 브라질에 내주고 12위로 물러앉았다. 2004년에 10위 자리를 인도에 넘기고 11위로 주저앉은 지 2년 만이다. 내년이면 뻗어가고 달려가는 러시아(14위)와 오스트레일리아(15위)가 12위 자리도 내놓으라고 등을 두드릴 것이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사필귀정’과 ‘인과응보’라는 말이 요즘처럼 두렵게 들린 적이 없었다. 이 정권이 출범하던 시절 대한민국은 아시아 기업가들이 투자하고 싶은 곳으로 첫손가락을 꼽던 나라였다. 2006년 대한민국은 절대로 투자하기 싫은 나라 리스트의 맨 윗자리에 올라 있다(컨설팅 회사 맥킨지 보고서). 세계 22개국 700명의 CEO는 반기업 정서가 세계 최고의 나라로 대한민국을 들었다(컨설팅 회사 액센츄어 보고서). 이대로 가면 “머지않아 한국사람들이 중국에 일자리를 구하러 가는 날이 올지 모른다” 던 리콴유 싱가포르 전 총리의 불길한 예언이 몇 년 앞당겨 현실이 될 것이다.
모든 나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잘살든 못살든 마찬가지다. 나라의 운명을 가르는 것은 문제의 난이도가 아니라 문제를 대하는 태도다. 나라의 지도자가 나라의 문제 앞에서 도피하느냐, 좌절하느냐, 극복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지도자가 문제 앞에서 무릎을 꿇거나 도망을 치면 그 국민은 다른 나라의 종살이를 면할 수 없다.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쳐 이겨낼 때만 그 국민과 자손들에게 주인으로 살길이 열린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얼마 전 “우리 정치·경제·사회 중 어디에도 빨간불이 켜진 곳은 없다”고 말했다. 이 진단은 바른 진단인가. 진단이 옳아야 병을 바로 알고 병을 이겨낼 수 있다. 우리가 주인이 되느냐 종이 되느냐가 여기 달렸다. 불행히도 대통령의 진맥은 완전히 헛곳을 짚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운명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앤 크루거 스탠퍼드대 교수는 몇 년 전 아프리카 중앙은행 총재들 앞에서 “여러분도 한국을 배우면 한국처럼 될 수 있다”고 연설했다. 새뮤얼 헌팅턴 하버드대 교수도 자신들의 가난을 미국 탓으로만 돌리는 남미국가를 향해 “한국인의 검약·투자·근면·교육·조직 기강·인내·도전의 정신을 배우라”고 충고했다. 우리는 이렇게 지난 60년 동안 세계의 성공 교과서를 끊임없이 새로 고쳐 써왔던 국민이다.
우리는 성공해야 하고, 성공할 수 있고, 성공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성공해서 한의 역사를 지금 여기서 마감해야 한다. 천년을 내려온 우리 꿈이다. 대통령의 꿈은 그게 아니라는 말인가.
오늘은 이 정권 출범 1370일째 날이다. 456일 남았다. 마지막 날까지 이 걸음으로 갈 것인가. 국민의 소리를 들어라.





